나는 약간 긴장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왼팔을 앞으로 똑바로 뻗어봐."
나는 일단 아버지가 하라는 대로 했다. 아버지가 다시 말했다.
"팔을 뻗은 채로 몸을 한 바퀴 돌려봐."
"어?"
"그 자리에서 발을 움직이지 말고, 어느쪽이든 상관없으니가 돌아보라구. 컴파스처럼 말이야."
아버지의 표정은 진지했다. 나는 주춤거리다가 왼팔을 쭉 뻗은 채 왼쪽으로 몸을 한 바퀴 돌렸다. 내가 다시 아버지와 마주하게 되자 아버지는 말했다.
"지금 네 주먹이 그린 원의 크기가 대충 너란 인간의 크기다. 그 원 안에 꼼짝 않고 앉아서, 손 닿는 범위 안에 있는 것에만 손을 내밀고 가만히만 있으면 넌 아무 상처 없이 안전하게 살 수 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겠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가 말을 이었다.
"너는 그런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나는 잠시 생각한 후 대답했다.
"늙은이같아."
아버지는 싱긋 미소지은 후 말했다.
"권투란 자기의 원을 자기 주먹으로 뚫고 나가 원 밖에서 무언가를 빼앗아오고자 하는 행위다. 원 밖에는 강력한 놈들도 잔뜩 있어. 빼앗아오기는커녕 상대방이 네 놈의 원 속으로 쳐들어와 소중한 것을 빼앗아갈 수도 있다. 게다가 당연한 일이지만 얻어맞으면 아플 것이고, 상대방을 때리는 것도 아픈 일이다. 아니 무엇보다 서로 주먹을 주고받는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그런데도 넌 권투를 배우고 싶으냐? 원 안에 가만히 있는 편이 편하고 좋을 텐데."
나는 아무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배울 겁니다."
아버지는 또 싱긋 웃고 말했다.
"자 그럼, 시작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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