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스 플랑크 평전 - 근대인의 세상을 종식시키고 양자도약의 시대를 연 천재 물리학자
에른스트 페터 피셔 지음, 이미선 옮김 / 김영사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에른스트 페터 피셔'의 <막스 플랑크 평전>을 보았다.

 
다른 책들은 젖혀두고 이 책만 보았는데 쉽진 않았다. 이 책은 과학자라는 신분을 지닌 한 인간의 삶이 세상에 어떻게 귀속당하여 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당시 격변의 시대상을 막스 플랑크라는 지식인의 눈을 통해 들여다볼 수 있었는데, 개인이 대중으로 또 국가라는 하나의 거대한 몸통('몸체'라고 쓰고 싶기도 하다)으로 점점 흡수당하여 획일화되는 부자연스러운 세상이었다. 마치 파란색 잉크병에서 잉크 입자만 뽑아내려 하듯, 생각과 사상의 엔트로피가 제거되어가는 세상. 개인의 자유도가 하나씩 떨어져나가는 세상. 모든 정보의 통로가 막혀있는 세상. '히틀러'라는 고유명사가 보통명사화 되어가는 그런 세상. 히틀러라는 단수 명사가 복수 명사가 되어가는 세상이었다. 곳곳에서 히틀러들이 작용하는 세상이었다.

 당시대의 작용자는 전쟁이었다. 어디든 전쟁이 있었고, 누구든 전쟁을 피해다닐 순 없었다. 막스 플랑크도 예외일 순 없었다. 책을 읽어보면 그는 참 성실하고 부지런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쟁이 그의 삶을 야금야금 집어 삼키는 와중에도 연구와 학회일 그리고 독일의 물리학 성과를 위해 열심히도 뛰어다녔다. 삶의 곳곳에 물리학의 장막을 쳐두고 그안에서는 최대한의 자유와 긍지를 누리려고 하였다. 물리라는 장막을 걷기 싫었을 것이다. 하지만 연구소 동료, 그리고 가족들이 장막을 걷어치우고 저 포연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을 순 없었다. 결국엔 막스 플랑크도 장막을 걷을 수 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느틈에 나치를 위한 어용 물리를 해야했고, '하일 히틀러'를 외쳐야만 했다.

 세상은 참 쉽게 바뀌어갔다. 어렵게 표현하면 격변이었고, 쉽게 말하면 생기는 족족 망해버리는 시기였다. 막스 플랑크는 프로이센의 왕, 빌헬름 1세가 통치하고 있을 무렵 태어났다. 얼마후에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서 왕이 황제로 등극을 했고, 그 후 손자인 빌헬름 2세가 황제 자리를 이어받았다.
동시에 독일은 세계 강대국과 발맞추어 제국주의로 돌아섰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의 패전으로 제국주의는 몰락(황제가 네덜란드로 도망갔다)하였다. 사회민주당에 의해 '바이마르공화국'이라는 별칭을 가진 민주공화정이 탄생하였지만, 우익이 한 쪽으로 표를 몰아주는 바람에 히틀러가 총리가 되어 정권에 발을 걸칠 수 있었다. 얼마 뒤에 대통령이 죽고, 총리만 남은 독일은 시간을 멈추었고, 나치당이 제1여당이 되어 더 이상 정치적 변모는 하지 않게 된다. 대통령과 총리를 조합한 '총통'에 오른 히틀러는 본격적인 독재정치로 들어선다. 이 히틀러를 총통으로 모신 나치는 글로벌화를 위해 제 3제국 건설 착수에 들어간다. 그리고 누구나 다 알다시피 제 2차 세계대전의 패전으로 프로이센의 유산, 공화국의 유산, 나치의 유산 이 모든 것이 싹 쓸려버린다. 패전국이라는 도장을 찍은 곳도 베르사유 궁전이었다(일명 베르사유 조약).

 19세기부터 과학계 전반은 뉴턴이 곳곳에서 본격적으로 분해되는 시기였다. 분해되는 만큼 과거의 거인들에게 이어받았던 뉴턴의 철학적 유산은 곳곳에 뿌려졌다. 행성간의 힘의 법칙은 전기와 자기의 힘과 장의 법칙으로 나타났으며, 광학은  뉴턴이 프리즘으로 빛을 나눴던 것 그 이상의 영역(가시광선 영역을 더 벗어난)으로 확장되어 분광확이라는 학문으로 진화되어갔다. 스펙트럼을 통해 드러난 새로운 원자들의 존재는 화학을 분자나 원자의 시각 수준에서 들여다보게끔 하였다. 뉴턴이 곳곳에 작용하는 과학계였지만 결국엔 코페르니쿠스적인 혁명적 관점으로 이동하였다.

 힘을 넘어선 에너지라는 개념의 완성이었다.   
  

 

   
 


에너지의 특성을 이해하려면, 먼저 세계의 사건들 및 과정들과 관련된 아주 중요한 두 가지 특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공간을 가로지르는 물체의 운동이 지닌 특성이며, 다른 하나는 열의 특성이다. 공간을 가로지르는 운동을 기술하려는 노력은 17세기 말이 되어서야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 그 뒤 놀라울 정도로 오랫동안 씨름한 끝에 과학자들은 마침내 열의 특성을 밝혀내는 데도 성공했다. 19세기 중반이 되어서였다.  


<'갈릴레오의 손가락' 중에서... P. 142~143>

 
   

막스 플랑크의 양자가설은 현재의 양자역학의 토대가 되었다. 그 해가 딱 떨어지는 1900년 이다. 기존 물리학에 고전이라는 단어가 붙어버림으로써 또 같은 의미로 현대물리가 태동함으로써 과학사라는 타임라인에 시간적 분할이 이루어진 듯하지만, 실은 공간적 분할이었다. 우주가 미시 세계와 거시 세계로 나뉘고 당시 우주를 지배하는 언어는 새로이 나뉜 틀을 설명할 수 없는 지경에 이러렀다.

  당시까지 설명할 수 없었던 현상중의 하나는 흑체복사를 어떻게 설명하느냐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뜨거운 물체(모든 전자기파를 흡수한 이상적인 물체를 흑체라 한다)에서 방출되는 (그러니까 관측된) 빛의 스펙트럼을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 없었다. 보이긴 하는데 말로는 어떻게 설명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지게 되었다.

 이론적인 내용이야 다른 책들을 보면 될터이다.
아무튼 드디어 실마리를 얻었다. 막스 플랑크가 해낸 것이다. 빛을 믹서기로 갈아버린 것이다. (물론 믹서기라는 단어에 혼동을 할 터이지만 개념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끄집어 내었다.) 그러니까 믹서기로 진짜 갈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일종의 상징적 행위로 보면 된다. 가령 사과가 100개 있다고 하자. 사과를 하나, 둘, 셋,... 이렇게 셀 수 뿐이 없다. 그런데 생각을 달리하면 다른 식으로도 셀 수 있다. 사과를 몽땅 믹서기에 넣고, 갈갈이 갈은 뒤 1리터 짜리 그릇들에 담으면 하나, 둘 이렇게 개체로 세던 방식(그러니까 한마디로 무게 또는 질량인 kg이나 g으로 세던 방식)을 단위가 리터인 부피로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총 질량이 얼마인가가 될 사과 100개가 몇 리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부피로 측정가능하게 되었다. 막스 플랑크가 내놓은 플랑크 상수가 한마디로 이런 믹서기 역할을 한다. 빛을 작용양자 플랑크 상수에 비례시켰더니 에너지(흑체에서 방출되는 관측된 빛의 스펙트럼)로써 측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빛의 진동수(Hz)를 에너지(J, 줄)로 재해석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갈려서 액체가 된 사과즙은 연속적 값이 아닌 불연속적인 값을 보인다는데에 문제가 있었다. 마치 1리터, 2리터 이렇게 말이다. 1.5리터는 될 수가 없다. 왜 그렇게 되는지는 설명할 수 없다. 그냥 그런것이 그때 알아낸 자연의 진리였다. 이런 불연속적인 값으로 인해 고전물리에서 현대물리로 도약하였다.  

   
 
에너지와 시간이 만들어낸 산물은 어떤 우연한 배열이 아니다. 이러한 물리학적 기본량의 조합을 '작용'이라고 한다. 따라서 h는 가끔 '작용의 플랑크 양자' 혹은 '작용양자'라고도 불린다. 이를 통해 자연 안에 존재하는 근원적이며 본래적인 틈(Lucke)이 자세히 설명된다. 그것은 에너지가 아니라 작용 즉 에너지와 시간이 만들어낸 생산물이다.

<'막스 플랑크 평전' 중에서... P. 136>
 
   

 

플랑크는 그때 필요한 상수 h를 작용양자라 불렀는데, 후세에 플랑크의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그러니까 '작용'이라는 물리적 의미는 앞의 사과의 예를 들어 '그램(g)을 리터(L)로 조합 시킨다'는 의미이다. 진 동수 Hz는 사실 시간단위이며 에너지는 그 자체로 에너지 단위이기에 에너지와 시간이 만들어낸 생산물로 표현한 것이다. 플랑크는 이런 불연속적인 에너지, 즉 에너지 알갱이들을 '양자(Quantum)'로 부르자는 제안을 하게 된다. 쉬운 의미로 '한 스푼'쯤 된다.

  결정론적 인식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기존의 철학관에 의하면 태양이 있음으로 해서 지구는 미래로 달려가지만 결국엔 이 모든 것이 신의 의도와 맞물려 결정되었다. 태양, 지구, 다른 별들의 궤도는 결국 일상이라는 루틴을 만들어냈다.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또 가을, 겨울을 겪다보면 다시 봄이 온다는 우주의 결정론적 인식은 농업 생산이라는 삶의 과제이자 인류의 큰 숙명이었다. 또 이런 원인과 결과에 따른 명제를 착실히 수행한 결과 농업 생산을 획기적으로 증대시키고 다른 수단으로도 삶이 영위될 수 있다는 기계론적 관점 또한 더불어 확장되었다. 그것은 바로 힘의 사용이었다. 빛을 전기로 받아들이고, 말의 힘을 엔진으로 대체시켰다. 그런데 이 모든 관념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플랑크는 새로운 이론으로 학계를 놀래켰지만 권위를 인정받은 것은 아니었다. 단지 실험결과에 맞추어진 듯한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다. 당시 시대적 합리성이란 권위였지, 대중을 위한 쉬한 이해와 같은 것과는 멀었다. 그러니까 권위를 인정받는다는 뜻은 권위자들이 인정한다는 의미이고 그것이 바로 시대의 대중성이었다. 아무튼 권위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또다른 권위자들에게 이해가능한 설명이 필요했다. 그래서 이런 양자도약을 기존의 고전물리의 틀에서 재해석하는 작업을 하지만, 이미 나침반의 바늘은 새로운 곳만 가리켰다.

 당시에는 전쟁이 시대적 작용자였다. 전쟁은 권위자의 명령에 따라 진행되고 멈추지만 정말 필요한 것은 대중성이었다. 민중들의 동의없이 공화정에서 전쟁을 치루기란 쉽지 않다. 대중성은 과학계에도 몰아닥쳤다. 한마디로 대중을 위한 과학, 그리고 (독일이 과학의 중심에 있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국가를 위한 과학이 필요한 때였다. 대중의 이해를 위한 간결화(simple)가 필요한 때였다. 플랑크는 이를 위해 또 다른 발견을 하기에 이른다. 물론 결과론적인 이야기이다. 그의 두번째 발견은 '아인슈타인'이었다. 아인슈타인이 등장함으로써 플랑크의 물리적 기반(양자이론)을 확고히 해주었으며, 더불어 '대중의 관심'도 집중되었다. 그리고 후에 등장한 '슈뢰딩거'까지. 이 두 명의 과학자는 '대중성'과 '간결성(파동방정식이라는)'이라는 시대적 명제에 답을 하였다.

 문제는 시대가 시대였다는 것이다. 시대적 합리성 혹은 합법성은 해석하기 나름이다. 양자역학이라는 물리적 이론이야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철학적 순수성은 보장하지 못했다. 아인슈타인이나 슈뢰딩거부터 외국인이지 않던가. 순수성은 혈통으로 번져갔고, 막스 플랑크는 정치적인 것과 정치적이지 않은 것들이 내뿜는 중력을 혼자서 감당하려 하였다. 정치적이지 않은 것에는 물리학이라는 학문이 걸려 있고, 정치적인 것에는 가족이 걸려 있다. 그는 버텨가며 물리학의 장막속에 있으려 하였지만 결국엔 장막이 들춰져 버렸다. 물리학계는 나치계가 점거해버렸다. 그렇다면 가족은? 큰 아들은 1차 세계 대전 당시 전쟁터에서 죽었고, 작은 아들은 히틀러 암살 사건으로 유명한 '발키리 작전'에 연루되어 재판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같은 날 사형 당한다. 비극적인 개인사이다.

'에른스트 페터 피셔'의 <막스 플랑크 평전>은 흥미롭다. 또 어렵다. 흥미로운 부분은 플랑크의 개인사이며, 어려운 부분은 역시나 물리학과 관련된 부분이다. 역사와 물리라는 두 거점을 왕복하는 이 책은 사실 아쉽기도 하다. 물리에 관한 부분에서는 좀 더 쉬운 참고서적이 필요할 듯 싶다. 짧은 책 안에 그것도 전체가 아닌 일부에만 물리학을 펼쳐 놓으려 하니 들락날락 거리는 수많은 물리학자들과의 연계도 쉽게 이어지지도 않고, 또 개념들마저 압축시켜 놓으니 쉽사리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물론 읽는 독자의 성향에 따라 천차만별로 읽히겠지만 말이다. 플랑크의 개인사 관련 부분은 흥미로운 부분도 많지만, 이 역시 역사라는 실로 묶여 있기에 시간적, 공간적 이해도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물론 이것도 역시 개인차에 따라 다르겠지만.

 불리한 시대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당시 물리학계를 받쳤던 막스 플랑크. 아틀라스는 제우스와의 전쟁에서 져 그로인해 천계를 어지럽혔다는 죄목으로 천공을 들고 있어야만 하는 벌을 받지만, 막스 플랑크는 다른 이유로 평생 동안 물리학을 떠받쳤다. 그 이유는 오직 자기가 원해서이다. 물론 세계적 물리학의 완성에 다가서기 보다는 독일 중심의 물리학을 원하였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이유로 인종이 다르다고, 성별이 다르다고 사람들을 배척하진 않았다. 순수한 목적이라는 것은 없겠지만 물리학에 도전했던 그 정신만은 순수함에서 나왔다고 본다.

어쨌든 한 개인이 어떻게 물리학과 역사를 쉼없이 왕복하고 있는지 과감없이 보여주는 책이라 생각한다.

PS.

1. 이 책에 쓰여져 있는 물리학적 개념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양자역학의 개념보다는 그것 보다 더 근원적인 것들, 그러니까 에너지와 열에 대해서 좀 더 확실히 이해하여야만 한다. 개인적으로 이 평전을 읽으면서 '피터 앳킨스'의 <갈릴레오의 손가락>을 참고했다. '과학의 10가지 위대한 착상들'이라는 부제에서 보여지듯이 이 책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열, 에너지, 엔트로피, 양자와 관련 기본적 개념들을 그나마 쉽게 다룬다. 이 책 역시 추천하는 책이다.


2. '<막스 플랑크 평전>을 쓴 저자 '에른스트 페터 피셔'의 또 다른 책 <슈뢰딩거의 고양이>도 추천하는 책인데 이 책은 사고실험과 관련한 책이다. 그러니까 실제로 실험을 할 수 없는 것들을 머릿속에서 돌리는 사고실험 관련 책이다. 하지만 분량은 많지 않아 오히려 <갈릴레오의 손가락>을 더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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