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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노래 ㅣ Mr. Know 세계문학 27
시배스천 폭스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2월
평점 :
품절
내가 『새의 노래』(시배스천 폭스 | 열린책들, 2006)라는 책을 들게 된 이유는 『서부 전선 이상 없다』(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 열린책들, 2006) 라는 책 때문이다. 레마르크의 이 책을 올해 초에 읽었었다. 참호속의 어린 병사 '파울 보이머'의 눈을 통해 전쟁의 본질을 들여다 보았는데, 시종일관 건조한 문체임에도 작가가 그의 조국(독일)에 극치의 조롱을 던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시배츠천 폭스의『새의 노래』의 배경 역시 세계 제1차 대전이다. 그리고 레마르크가 그려냈던 독일의 그 서부 전선이다. 서부 전선은 프랑스 북동부를 일컫는다.『서부 전선 이상 없다』는 독일군의 시각으로, 『새의 노래』는 영국군의 시각으로 이 위선으로 치장된 전쟁을 노래한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전투들속으로 두 작가(시배스천 폭스와 레마르크)가 안내하는데로 이끌렸지만, 전쟁속의 작디 작은 개인을 그린다는 점에서 ,국적이 다른 이 작가들의 이야기는 별반 다를 것이 없었지만 그 효과는 중첩되어 이른다.
잃어버린 세대.
전쟁터의 병사들은 시간이 등져버린 세대이다. 역사가 이들 세대를 기록했지만, 수많은 개인에 대해서는 함구한다. 국가가 있기전에 국민이 있지만 이미 국민, 아니 개개인의 삶은 국가에 통채로 먹혀버렸다. 특히나 총을 들고 전쟁터에 나선 이들은 더더욱. 인간이 '적'이라는 개념을 갖는 것이 얼마나 비극적인지를 『서부 전선 이상 없다』와 『새의 노래』에서는 명확히 보여준다.
1차 대전의 특징은 가스전과 참호전, 그리고 철조망이다. 참호전이 얼마나 드셌으면, 우리가 입는 코트 이름에 참호(혹은 도랑)라는 이름을 가져다 붙였겠는가. 이 코트의 이름은 '트렌치 코트'이다. '트렌치(trench)'가 바로 참호라는 뜻이다. 그리고『새의 노래』에서 알게되었지만, 땅굴도 같이 파면서 전쟁을 치루었다. 영화속에서나 문학속에서 땅굴을 크게 다루어오지는 않았지만(땅굴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해다), 어쨌든 여기서의 땅굴은 전쟁을 치루는 아군들끼리의 계통을 가르는 경계이다. 참호는 서로 다른 이념을 가르는 경계로 해석하면 되겠다.(사실, 무의미한 해석이긴 하다.) 굳이 철조망까지 언급해본다면, 이는 상대의 참호에 다다르기 위해 비용(혹은 희생)을 치러야만 하는 고지서나 다름없다. 시배스천 폭스의 이 책은 바로 '참호전'과 '땅굴전' 그리고 '철조망'에 얽힌 전쟁이다. 그리고 주로 부각되는 것이 참호와 땅굴이다. 『서부 전선 이상 없다』에서는 철조망이 부각된다. 이 두 책에는 흥미로운 것이 하나 있는데, 『서부 전선 이상 없다』에서는 야밤(혹은 새벽)에 독일군이 철조망 치러 나가는 모습의 묘사가 잘 나타나있다. 철조망 치는 것을 끔찍이도 치기 싫어하는 어린 병사들을 주로 다룬다. 『새의 노래』에서는 영국군이 철조망을 끊어야한다는 의지를 문맥속에서 암암리에 드러낸다.
수많은 전쟁 영화가 있겠지만, 문득 생각이 나는 영화가 있다. 본지가 오래되었고, 기억도 가물가물하여 세세한 기억은 나진 않지만 분명 맞을 듯 싶다. 영화의 제목은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가을의 전설』이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잊었다. 다만, 참호를 뛰쳐나가려는 영화속 병사들의 긴장한 모습이 단편적이긴 하지만 생생하다. 수킬로미터에 걸친 참호속에서 일렬씩 정렬한 병사들이 호각 소리에 맞추어 참호밖으로 기어올라 독일군 진지로 향하는 모습은 정말 가관이었다. 죽음을 향해 뛰어드는 형국 그 자체였으니까. 그리고 이 영화속 또 하나의 인상깊은 장면은 '철조망'에 걸린 한 병사이다. 찾아보니 이 병사는 '브래드 피트'의 극중 막내 동생이었다. 동생은 거미줄에 걸린 힘없는 곤충처럼 수차례 날개짓만 하더니, 결국 철조망에 걸린채 죽음을 맞는다. 독일군의 기관총에 난사당한다. 형인 '브래드 피트'는 울면서 구하러가지도 못하고 지켜만 본다. 그래도 이 영화는 양반이었다. 『새의 노래』에서도 비슷한 장면의 묘사가 나오는데, 철조망에 걸린 병사의 형체가 조각 조각 사라지는 모습을 차근차근 순서대로 묘사해놓았다. 그것을 보고 있는 주인공인 '스티븐'(직책은 중대장)의 마음 역시 그 병사의 형체 그대로 갈갈이 찢겨진다.
국가가 전쟁을 하는 이유는 많겠지만, 그 수많은 이유들을 단 두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단순하다. 무언가를 뺏으려하거나, 무언가를 지키려하거나. 하지만 병사들에게 있어서 이 개념마저도 희박하다. 그래서 국가는 '적'을 주입시킨다. 그 다음부터는 자동이다. 왜냐하면, 알아서 상대를 향한 분노로 몸안 가득 차게 될테니까. 자신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총알을 고이 날려주어서만은 아니다. 자신의 동료가 끔찍하게 죽어가는 것을 보고, 스스로 분노를 키우는 것이다. 이름없는 병사들은 쓰러진 또다른 이름없는 병사들을 위해 자신이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한가지를 아낌없이 내던진다. 그들이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것은, 그들의 목숨이다.
시배스천의 이 책은 흥미롭다. 전투신에서는 그냥 빨려들어간다. 하지만, 가끔 책을 읽는데 장애를 만난다
(나에게는 그랬다). 이 책은 총 세가지 부분으로 나뉘어져있는데, 전쟁전, 전쟁 당시, 그리고 전쟁이 한참 지난후의 이야기로 나누어 놓았다. 개인의 비극사를 더욱 확장시키려는 작가의 의도가 있겠지만, 나에게는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다. 전쟁전 그 당시 프랑스 북부는 평화롭고, 다양한 색깔이 어우러졌으며, 느렸다. 그리고 전쟁후의 이 지역은 고통의 신음소리, 질척이고 칙칙한 어두운 단색, 그리고 긴박함으로 묘사하고 있다. 물론 이 두가지 차이가 극명하니 대비를 보이긴 하지만, 전쟁에 대입되어진 개인사가 솔직히 장난스럽게 느껴진 부분도 있다. 한마디로 전쟁전의 개인의 삶을 약간은 잘못 투영시키지 않았나 하는점이다. 만약 작가가
'전쟁 = 국가의 미친 선전 + 개인의 도피'라는 공식을 다루고 싶었다면, 좀 더 설득력있는 개인사를 다뤘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다
(내가 잘못된 해석을 내렸을지도 모른다). 또 전쟁후는 좀 더 실망이다. 잃어버린 세대의 후손을 다루었는데, 이 역시 다뤄진 개인사의 스펙트럼이 너무 좁아 몇가지 상황을 어거지로 이어붙였다는 느낌이다. 1차 세계대전을 치루었던 할아버지의 실체를 찾음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완성시키려는 한 여인의 이야기인데, 둘의 유전자 코드가 너무 닮아있다. 역사가 주는 우연과 필연, 두가지 관점에서도 너무 어설프다.
주인공 '스티븐'이 가지고 있는 '암호만들기' 특기는 그 소재가 주는 독특성과 새로운 이야기를 이끌어낼 수 있는 파워를 가졌음에도, 너무 긴 이야기를 쓰다 작가 자신이 미처 까먹고 있다가, 뒤늦게 발견하고 부랴부랴 그 '존재의 이유'를 낭비해버린 느낌을 받았다.
그래도 전쟁신과 작가가 의도하려는 이야기는 특별한 어긋남없이 독자에게 전달되어지는 것 같아 이것으로 만족하긴 한다. 내가 읽고 싶은 부분은 오직 전쟁신이었기에 말이다. 『서부 전선 이상 없다』는 오히려 훨씬 간결한 이야기임에도 모든 것들이 충격으로 다가왔던 바, 전쟁관련 책을 읽길 원한다면 이 책부터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덧붙임>
1. 제1차 세계 대전을 다룬 (내가 알고있는) 몇가지 책들...
『서부 전선 이상 없다』는 '열린책들'에서 출간한 것으로 읽었기에 사진을 이것으로 올린다. 정말 최고의 책이다. 이 책을 읽고 1930년에 '루일스 마일 스톤'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영화도 봤을 정도이다. 영화 또한 수작이다. 1931년에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았다한다.
『참호에서 보낸 1460일』이라는 책은 소설은 아니지만, 충분히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1차 세계대전중의 참호와 관련된 내용들을 다큐멘터리처럼 이야기한다. 참호가 단순히 땅만 판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크리스마스 휴전, 큰 전쟁을 멈춘 작은 평화』, 이 책은 영국군 병사들과 독일군 병사들간의 크리스마스 휴전을 한 이야기인데, 읽어보진 않았지만 감동의 이야기라는 것을 확신한다.
2. 혹, 좀 더 색다른 전쟁 이야기를 읽고 싶다면, '로버트 카파'의 책 두권을 권하고 싶다.
『그때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로버트 카파 | 필맥, 2006)와
『로버트 카파』(알레스 커쇼 | 강, 2006)이 그것이다. 정말 재밌게 읽을 것이다. (각각의 링크는 나의 독후감이다)
3.
그리고 소개할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이라는 책은 개인의 삶(후손을 포함한)이 어떻게 역사에 개입당하는지, 혹은 평범한 개인이 역사속에서 어떻게 필연과 우연으로 실타래를 풀어오는지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한 꼬마의 시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긴 하지만, 현재 그 꼬마를 잉태시킨 집안의 내력은 폭력의 역사속에서 결코 나약하지 않다. 꼬마도 강한놈이다.(링크는 간단한 나의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