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 전설적 포토저널리스트 로버트 카파의 2차대전 종군기
로버트 카파 지음, 우태정 옮김 / 필맥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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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종군기자라는 단어 자체도 생소할 법한 시절, 우연히 카파의 사진들을 전시회에서 보았다.... 솔직히..그때는..사진에 별로 감흥이 없었다. 어렸을 때라 무엇을 알겠는가..지금 느끼는 것이지만 지금 다시 전시회가 있어서 그의 사진들을 볼 기회가 있다면 정말 하나하나 뜯어보고 싶을 정도이다... 그런데..그 당시...카파의 마지막 사진을 보고 정말 충격을 받았다. 다른 사진들은 별 기억이 없다. 하지만 유독 카파의 죽기전 마지막 샷 한장이 지금까지 강하게 내 뇌리에 박혀있다. 그 어렸을때.. 왠지 지뢰를 밟아 사망한 사람에 대해 쉽게 상상할 수 없었지 않나 싶다.  (마지막 사진을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내 기억과 좀 달랐다. 기억하기론..황량한 제방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꽤 많은 군인들이 제방옆에서 전진하고 있었다.)



<로버트 카파 -- 파리의 한 카페에서...1952년>




이 책이 출판된 것을 알고 왠지모를 희열을 느꼈다. 예전 전시회에 갔던 희미한 일을 애써 기억하면서 말이다. 내가 전시회에서 본 사진들은 아마 인도차이나 전쟁 사진들이었을 것이다. 그런데..이 책은 인도차이나 전쟁이 있기 훨씬 전인 제2차 세계대전중인 1942년부터 1945년 사이에 카파가 종군기자로 활약할때의 이야기를 담고있다. 이 책을 보며 그가 왜...전설적 보도사진기자인지 진정 온 몸으로 느꼈다. 몸서리칠 정도로...

역시 이 책이 주는 기쁨은 그의 사진을 본다는 것 보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데에 있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그가 전쟁중에 보고, 듣고, 느꼈던...모든 것들)를 함축해서 나타낸 것이 그의 사진이다. 정말...하나하나의 사진들 속에는 그가 겪었던..이야기들이 압축되어 들어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예전에 찍었던 우리 자신의 사진을 앨범을 뒤적거리면서 추억을 회상하는 것과 일맥 같은 의미이다. 그렇기에, 이 책이 바로 카파의 앨범이다.

그의 이름은 <로버트 카파>. 사실..이 이름은 그의 또 다른 이름이다. 그의 진짜 이름은 <엔드레 에르노 프리드만>이다. 그는 헝가리 태생의 유태인이라 결국에는 이름을 개명하였다. 그는 짧은 인생동안 무려 5차례의 전쟁을 경험하였고, 그 속에서 자신만의 사진들을 찍었다. 그리고 그가 <라이프>를 위해 일하면서 찍은 한 장의 사진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또 다른 전장에서 결국...그렇게 산화하였다.

이 책을 읽으면 그가 왜 유명한지 정말 알 수 있다. 아니..왜 유명할 수 밖에 없는지 알 수 있다. 그는 항상 최선봉에 있었다. 가장 큰 사건은 어떠한 기자도 찍지 못한, 아니..접근하지도 못했던..그 유명한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펼친 D-Day에 찍은 사진들이다. 이 책표지의 그림은 해변을 상륙하는 한 군인을 담고 있는데, 이것이 카파가 총,포탄이 날라다니는 상황속에서 찍은 사진이다. 이 사진은 결국 '카파의 손은 떨고 있었다'라는 제목으로 <라이프>지에 실리게되었다.(사실 이 사진은 인화할때, <라이프>지의 한 조수의 실수로 열을 받아 사진이 흐려진것이다. 그리고 이 조수의 실수로 인해 카파가 오마하 해변가에서 찍은 106장중 8장만을 제외하고 나머진 다 소실되었다.) 아무튼, 그는 그렇게 민간인으로는 유일하게 다른 연합군 군인들과 함께...노르망디의 오마하 해변에 있었던 것이다.
 
<노르망디 오마하 해변 : 1944. 06. 06 (D- Day) : 유명한 사진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참... 이 사진속의 인물은...  Alphonse Joseph Arsenault라는 인물로 나중에 밝혀짐..이 양반은 80세의 나이로 1992년에 사망하였음...(우연히 찾은 웹사이트에서 발견... 클릭!!)

또 다른 박격포탄 한 발이 날아와 철조망과 바다의 중간 지점에 떨어졌다. 그 파편에 병사 한 명이 죽었다. 이지 레드 해안에서 두각을 나타낸 최초의 두 사람은 바로 아일랜드 태생의 종군신부와 유태인 군의관이었다.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카메라로 찍었다. 전보다 훨씬 더 가까운 곳에 포탄 한 발이 또 떨어졌다. 나는 전혀 겁먹지 않고 콘탁스 카메라 파인더에 눈을 댄 채 미친 듯이 셔터를 눌러댔다.

일 분도 채 지나지 않아 카메라가 먹통이 됐다. 장착한 필름 한 통을 다 써버린 것이다. 나는 가방에 손을 넣어 새 필름을 찾았다. 그러나 손이 젖은데다 심하게 떨렸기 때문에 필름은 카메라에 들어가기도 전에 망가지고 말았다.

나는 그 상태로 잠시 정지해있었다. 곧 두려움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속이 텅 빈 카메라가 내 손에서 떨리고 있었다. 전혀 새로운 공포에 휩쓸려 머리에서 발 끝까지 내 온몸이 떨리기 시작한 것이다. 얼굴마저 일그러졌다. 나는 야전삽을 떼어내 모래에 구멍을 파내려고 발버둥쳤다. 삽 끝에 돌이 하나 걸려 나왔다. 나는 그 돌을 멀리 내던졌다. 병사들은 모두 꼼짝 않고 엎드려 있었다. 해안선의 시체들만이 파도에 쓸려 이리저리 뒹굴 뿐이었다.

-- p. 195~196




이 대목에서 그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그리고 사진을 찍는 업이 그의 모든 것인지 알 수 있다. 그는 탄약이 아닌, 필름이 비어있는 상황에서 무력감과 정신적 공황감을 맛보았다. 그는 사진기를 든 병사이었다.

이 책이 재밌고 흥미있는 이유는 2차 세계 대전 당시의 카파의 종군기자로서의 활약이 너무도 생생하게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 중간 중간...카메라의 셔터를 눌렀던 그 상황이 사진으로 이 책에 할애되어있다. 그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사진을 찍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그렇게 보니..정말.. 카파의 사진은 너무나도 많은 것을 보여주고 있고, 이야기 해 주고 있다.


<카파의 마지막 사진 : 사진 오른쪽에 보이는 낮은 제방을 넘어가다 지뢰를 밟고 사망한다....1954. 5. 24.>

카파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인도차이나 전쟁을 취재하러 베트남에 갔다가 지뢰를 밟고 장렬히 산화한다. 그리고 그의 죽음은 보도사진기자들의 귀감이 되었다. 또 그가 죽기전에 몇명 인사와 <매그넘 Magnum>이라는 '국제 자유 사진 작가 그룹'을 설립하였으며, 이 그룹은 세계 각지의 사건들을 다큐식으로 보도하는 것으로 명성을 떨친다.

<덧붙임>

1. 이 모든 사진은 『매그넘 site』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2. 로버트 카파의 사진 보기...(클릭!! 매그넘의 '로버트 카파'로 넘어갑니다...)

3. 로버트 카파의 사진 중 1942년에서 45년 사이의 사진 보기...(이 책에 수록된 사진들이 있는 곳..)

4. 그 외 몇가지 사진들...(매그넘에 있는 사진들 中)


<레온 트로츠키 : '스탈린'의 숙적이자 혁명가인 우크라이나 태생의 정치인 ... 덴마크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고 있는 모습...1932. 11.27>



<카파를 전 세계에 명성을 떨치게 만든 사진 : '어느 인민전선파 병사의 죽음'이라는 제목의 사진으로 참호를 뛰쳐 나온 스페인 인민전선파 측의 한 병사가 날아오는 기관총탄에 맞아 양팔을 벌린 채 마스크처럼 경직된 표정을 지으며 쓰러지는 순간을 포착한 사진 : 카파의 유명한 말 " 만약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그것은 너무 멀리서 찍었기 때문이다." >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노인과 바다'등등..유명한 책을 저술한 '어네스트 헤밍웨이' 카파가 거의 아버지처럼 모셨던 사람으로 카파와 같이 술을 마시고...집에 돌아가다 교통사고를 당함... 카파가 문병가서 찍은 사진...이 책을 읽으면..몇가지 헤밍웨이에 대한 에피소드들도 담겨있다...>

2006. 0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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