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셋째 모델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처음으로 식민을 시작해 세워진 버지니아의 제임스 타운은 첫째 모델과 둘째 모델에의 혼합에 가깝다. 북부 뉴잉글랜드의 식민을 주도한 것 역시 유사하다. 다만 왕의 특허장을 가진 식민회사가 북부에 사람들을 데려가기 전에 순례자들이 먼저 도착했다. 그들은 소수였지만 처음이었고 나중에 북부가 승리했기 때문에 신화가 되었다.


토크빌은 영국인의 식민 방식을 세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첫째는 국왕의 명령을 받아 사람을 파견해 식민지를 개척하는 겁니다. 한 무리의 사람을 이끌고 가서 개척하고 경영합니다. 이때 중점은 토지 확장과 점유에 있습니다. 

둘째는 특수한 이익이 있는 곳을 확정하는 겁니다. 예컨대 은광이나 금광이 있는 지역은 개발자가 주도적으로 국왕에게 특별 허가서를 요청해 해당 지역에서의 독점적 권리를얻음으로써 다른 이들이 와서 이익을 다투지 못하도록 합니다.

셋째는 한 무리의 사람이 새로운 지역에 가서 먼저 그곳에 식민지 사회를 세운 뒤 국왕에게 보고해 특별 허가서를 요청함으로써 해당 지역에서 자신의 이권을 승인받는 겁니다. 이 셋째 모델은 북미 대륙에서 나타났습니다.  - P119

버지니아를 중심으로 하는 미국 남부 지역은 17세기에뉴잉글랜드와는 다른 식민지 사회로 발전했습니다. 남부의식민지는 앞에서 말한 둘째 모델에 가깝습니다. 현지에 간식민지 개발자가 그곳의 풍토가 사탕수수와 면화를 재배하는 데 적합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경쟁자의 진입을 막으려고 영국 국왕에게 특별 허가를 얻음으로써 토지 이익을 독점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 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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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검귀족과 법복귀족.
토크빌은 두 귀족가문의 결혼으로 탄생.

(프랑스)귀족의 가장 큰 공헌은 그들이 장기간에 걸쳐 프랑스관료의 골간을 이루었다는 점입니다. 프랑스는 고도의 중앙집권 국가로, 일찍부터 방대한 관료 시스템을 만들어 지방 봉건 세력을 대체하면서 국가를 운영했습니다. 

중국은 또 다른 전통을 가진 관료 대국입니다. 중국 관료 시스템에서는 당나라 때 이후 주로 과거 시험으로 인재를 뽑았습니다. 과거 덕분에 다른 지방, 다른 계층의 사람이라도 시험을 치르고 관료 시스템에 진입할 수 있었습니다. 과거 시험은 관료 시스템을 유지하는 인재가 다원성을 지니는 한편, 중심과 주변부, 상하 계층 간을 오갈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 P76

프랑스에는 과거 시험이 없었고, 프랑스의 관료 시스템은 주로 귀족 출신 인재가 메웠습니다. 관료 시스템과 귀족 시스템은 상당히 겹쳤고, 극도로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프랑스 대혁명 당시 수많은 귀족이 단두대로 보내졌고, 상당수 귀족이 서둘러 망명을 했으며, 더 많은 귀족이 가장자리로 물러났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프랑스 관료 시스템의 심각한 단절을 의미했습니다. 혁명 위원회는 각종 새로운 제도를 만들었지만 그들을 도와 이러한 제도를 집행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난 후 프랑스가 20-30년간 크게 혼란해진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이것입니다.
-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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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역사에 흥미로운 비교 사례가 있습니다. 미국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가 쓴 『국화와 칼로, 일본 문화를 분석한 책입니다. 베네딕트는 이 책을 쓸 때, 일본어를 한 마디도 못했고 일본에 가 본 적도 없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일본에 가서 조사하고 관찰할 기회조차 없었다는 점입니다. 당시는 진주만 공격이 일어나 미국이 일본에 선전포고를 해,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이었습니다.
- P71

베네딕트는 일본인 수용소로 갔습니다. 미국은 일본에선전포고를 한 후, 미국에 있는 사람 중에서 미국 시민증을가진 미국계 일본인 2세 젊은이와 아이를 포함해 모든 일본인이 사회에서 자유롭게 활동하지 못하도록 금지하고 수용소에 격리했습니다. 일본어를 배워 본 적도 없고, 일본에 머물러 보지도 못한 베네딕트는 수용소에 가서 이들 미국계 일본인을 만났고, 이들을 상대로 현장 조사를 해 『국화와칼』을 썼습니다.
-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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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학이 변화하는 순간에 쓰여진 책이었구나!!






 당시 나는 흔하게 해 오던 설명 방식이 아닌 좀 더 형식화되고 formal, 명시적이고 explicit, 명제 중심적인 propositional 방법론을 통해 이론을 발전시키자는 발상에 어느 정도 끌리고 있었다. (당시 나는 형식 모델 formal modeling 과 합리적 선택 이론이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 정치학에서 오늘날과 같은 지배적인 지위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다!)

 대체로 나는 정치 이론의 여러 주장들이 갖는 모호함이 불만이었다. 정치 이론상의 어떤 주장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는 것은 종종 다랑조개를 찾아 땅을 파는 것과 같아서, 열심히 파면 팔수록 모래 속으로 더욱더 사라져 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던 중에 이제는 너무나도 유명해진 케네스 애로의 "사회적 선택과 개인적 가치들"을 우연히 읽게 되었다. 비록 애로의 개척적인 연구를 충분히 이해하고 활용하지는 못했지만, 기존 정치 이론이 하지 못한 훨씬 더 형식화된 설명을 제시하는 작업에 도전하려는 내게 있어 그의 연구는 큰 힘이 되었다. 분명히 2장과 3장에서 주장이 전개되고 구성되는 방식은 상당 부분 내가 그의 책을 끙끙거리면서 독파했던 경험 덕분에 가능했다. - P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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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적인 민주주의 대부분은 의원내각제를 채택했고, 불과 소수만이 대통령제를 선택했으며, 미국식 대통령제를 채택한 국가는 전혀 없었다.
- P231

 다른 안정된 민주주의들이 미국식 체제와는 다른 입헌 체제를 가지고도 잘해 나가는 것으로 보인다는 사실에 주목하라고 할 것 같다. 사실상 이는 미국식 체제가 인기 있는 수출품이 아니라는 점을 입증한다. 1950년이나 그 이전부터 중단 없이 다두제적 민주주의 제도들을 유지해 온 21개국 모두를 안정된 민주주의라고 생각해 보자. 이들 가운데 3개국(프랑스 제5공화국, 핀란드, 코스타리카)을 제외한 모든 국가가 대통령제를 완전히 거부했다.
반면, 예외였던 그 3개국 중에서도 두 개 국가는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의 혼합을 선택했다.
-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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