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트 컨버전스
리처드 볼드윈 지음, 엄창호 옮김 / 세종연구원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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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무역비용 수준과 기업 이동

무역비용이 낮을 때 공장을 이전하지 않더라도 무역으로 판매할 수 있으므로 공장 이전이 낮을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정반대로 무역비용이 낮을 때 기업은 더 자유롭게 이전한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

애초에 한국에서 배터리를 시장수요가 많은 미국에 수출하고 있었고 무역비용이 높아서 미국의 배터리 수출은 많지 않았다고 하자.

한국 배터리 공장이 미국으로 이동하면 미국 내 배터리 시장의 경쟁이 높아진다. 동시에 한국로부터의 배터리 수입은 줄어들어 수입품과의 경쟁은 줄어든다. 애초에 수입이 많지 않았으므로 수입품 경쟁의 감소 정도는 크지 않다. 순효과는 미국 내 경쟁 증가이고 수익성 하락이다. 따라서 한국에서 미국으로 공장 이전은 미국 내 경쟁을 크게 증가시키고 이로 인해 공장 이전의 유인 또한 크지 않다.

무역비용이 크게 하락했다고 하자. 무역비용 하락으로 한국에서 생산된 배터리는 수출되고 미국 내에서 수입품으로서 미국 배터리와 심하게 경쟁하게 된다.

만약 미국으로 한국 배터리공장이 이전하면 미국 시장 내 경쟁은 높아지지만 수입품 경쟁은 대폭 감소한다. 따라서 한국에서 미국으로 공장을 이전해도 미국 내 경쟁이 크게 증가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무역비용이 낮아진 세계에서 공장 이전이 더 활발해진다.

무역비용은 운송비용과 관세비용 그리고 비관세장벽으로 구성된다.

우리의 사고실험에서, 더 많은 수익을 내려고 ‘남‘에서 ‘북‘으로 옮겨가는 기업이 어떤 효과를 얻을지 곰곰이 생각해보라. 지금 그 기업은 무역비용을 들이지 않고 큰 시장이 있는 ‘북‘에서 물건을 팔고 있지만, 이와 동시에 더는 ‘북‘으로 수출하지 않는다. 따라서 기업이 장소를 ‘남‘에서 ‘북‘으로 옮기면 ‘북‘ 시장의 지역 경쟁 강도가 곧바로 높아지지만, 한편으로 수입품 경쟁 정도는 줄어든다. 

(공장의) 장소 이동이 ‘북‘ 지역 내 경쟁에 미친 전체 영향은 두 가지 상충하는 효과 (지역 경쟁의 상승과 수입품 시장 경쟁의 하락)의 합이다. 

무역비용이 낮을 땐 ‘남‘에서 ‘북‘으로 장소를 옮기는 경우 ‘북‘ 지역 내 경쟁 강도가 약간 높아지지만, 무역비용이 높을 땐 경쟁 강도가 훨씬 더 높아진다. 이 말은 곧 무역비용이 낮을 때 이주하는 기업이 더 많아진다는 뜻이다. - P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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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컨버전스
리처드 볼드윈 지음, 엄창호 옮김 / 세종연구원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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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우위, 가격 변동과 수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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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의 공법, 전분육등법 그리고 답험손실법



본래 조선의 토지세는 수확량에 비례해 부과되었는데, 세종이 처음으로 토지세를 일정하게 고정시키는 정액세의 원리를 도입했다. 조선 초기에 과전법을 실시하면서 전국의 토지를 세 등급으로 나누었고, 1결의전세는 수확량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30두를 기본으로 정해두었다. 추수기가 되면 고을 아전이 직접 논밭에 나가 수확량을 평가해 세금액수를 감면해주는 답험손실법踏驗損法을 적용했다. 이 제도는 관리에게 너무 많은 재량권을 부여하고 있었다. 실제 시행 과정에서 실사를 맡은 아전들이 많은 횡포를 자행하며 농민들의 원성을 사고 세수도 감소한다는문제가 제기되었다. 이에 따라 관리의 착취와 부정을 막고 공평과세를실현하기 위해 전세를 아예 정액으로 고정시키는 방안을 논의하게 된것이었다.
공법 개혁은 세종이 직접 제안한 후에도 오랜 기간에 걸쳐 의견을 수렴하고 논의하였으며, 몇 차례 시범실시를 거쳐 단계적으로 확대 시행하다가 드디어 1489년 성종 대에 전국에 걸쳐 시행되었다. - P344

1430년(세종 12년) 7월, 세종은 "백성들이 좋지 않다면 이를 행할 수없다. 그러나 농작물의 잘되고 못된 것을 답사고험할 때에 각기 제 주장을 고집해 공정성을 잃은 것이 자못 많았고, 또 간사한 아전들이 잔꾀를써서 부유한 자를 편리하게 하고 빈한한 자를 괴롭히고 있어, 내 심히우려하고 있노라"고 말하며 공법의 편의 여부와 폐해를 구제하는 일을백관이 숙의해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조선 초기부터 지방 아전들의 횡포를 조정에서 임금까지 소상히 알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 P345

 세종 때 공법은 오랜 논의를 거쳐 수정되었다. 토지가 비옥한지 메마른지에 따라 여섯 개의 등급으로 나누고, 다시 그해의 풍흉에 따라 아홉 개의 등급으로 나누어 세율을 적용해 1결당 20두에서 4 두까지 차등 있게 내도록 하는 것이었다. 1427년(세종 9년)부터 그 시행 방안을 논의해 1444년(세종 26년)에 가서야 공법으로 확정되어 시범 실시되었다. 이후 지역별로 확대하다가 1489년(성종 20년)에야 전국에 걸쳐 실시했다. - P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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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등지서

사도세자의 피 묻은 적삼, 누가 과연 충신인가? 오동나무로 짠 뒤주, 나는 세자 죽인 일을 후회한다.”

영조가 사도세자 신주 아래 깔아둔 요의 솔기를 뜯고 그 안에 간직하게 했던 진짜 속내가 이렇게 해서 비로소 세상에 드러났다. 오랫동안 칼집에 들어 있던 칼이 스르렁 소리를 내며 빠져 나오자, 대신들은 심장과 뼈가 다 덜덜 떨렸다.

금등은 비밀문서를 쇠줄로 묶어 단단히 봉해 넣어둔 상자를 일컫는 말이다. 개봉할 수 없는 문서란 의미다. 금등지서에 적힌 두 구절은 고사가 있다. 당나라 때 안금장과 한나라 때 전천추는 충성스러운 간언으로 이름 높던 신하였다. 또 한나라 무제武帝는 강충江充의 참소로 여태자戾太子를 죽였다. 나중에 무고인 것을 알게 된 무제가 강충의 일족을 멸하고, 태자 죽인 일을 후회하여 귀래망사지대歸來望思之臺를 세웠다.

그러니까 금등지서에 적힌 내용의 의미는 이러했다. ‘내 아들 사도세자가 간신의 모함으로 오동나무로 짠 뒤주에 갇혀 원통하게 죽었다. 이를 위해 바른말로 간언할 안금장과 전천추 같은 신하는 과연 누구인가? 나는 한무제가 죽은 아들을 위해 세웠다는 귀래망사지대를 생각하면서 죽은 아들을 그리워하고, 돌이킬 수 없는 그 시간을 깊이 후회한다.’

청천벽력의 말씀이었다. 생전에 사도세자는 홍계희洪啓禧를 임금과 세자를 이간한 강충과 같은 인물로 지목하여 비판한 일이 있었다. 노론 벽파는 금등지서 속에서 귀래망사지대 언급을 접하고는 깊은 충격의 수렁 속으로 빠져들었다. 한동안 차가운 침묵이 흘렀다. - < 파란 2, 정민 지음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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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다산 연구에 중간은 없었다. 천주교 측에서는 다산이 한때 배교했지만 만년에 회개해서 신자로 죽었고, 국학 쪽에서는 신자였다가 배교한 뒤로는 온전한 유학자로 돌아왔다고 했다. 다산의 천주교 신앙은 일반적인 범위를 훨씬 상회하는 심각한 것이었다. 그의 배교를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없다. 진실은 중간에 있는데 전부냐 전무냐로 싸우면 답이 없고, 다산의 정체성만 흔들린다. 사람이 이랬다저랬다 할 수는 있어도 이도 저도 아닌 사람을 만들면 안 된다.

- < 파란 2, 정민 지음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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