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기
- 1000천년의 메소포타미아 전원화
- 400년의 그리스 암흑기



정착생활이나 정착생활에 완전히 의존하는 국가 건설 모두 한 번에 이루어진 성과는 아니었다. 커다란 인구 집단이 사라져버리고 정착생활 자체가 그 이전 정착생활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축소된 길고 긴 시기들이 있었다. 대략 기원전 1800년에서 700년까지 -1000년이 넘는 동안-메소포타미아의 정착지들은 그 이전의 4분의 1도 되지않았고, 도시 정착지들은 그 이전의 16분의 1에 지나지 않았다. 그에 따른 결과는 그 일대 전체에 끼칠 정도였고, 그래서 그 결과를 가혹한 통치자라든가, 지역적 전쟁, 특별한 흉작 같은 순전히 국지적인 우발 사건들하고만 결부시킬 수는 없다.  - P244

완전하게 합의된 의견이 없는 것 같지만, 우르 제3왕조의 몰락 이후 1000년이 넘는 동안 메소포타미아에서는 도시화보다는 전원화ruralization 가 지배적이었으며, 이는 대체로 갑작스러운 유목민의 침입때문이라고 하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 P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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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보다 더 재미있는 최진기의 전쟁사 2 - 근세부터 현대까지 세계사보다 더 재미있는 최진기의 전쟁사 2
최진기 지음 / 이지퍼블리싱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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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가하라, 고니시, 가토

1600년, 결국 이시다 미쓰나리와 도쿠가와 이에야스 사이에 전쟁이 일어납니다. 이 전쟁이 바로 그 유명한 세키가하라 전투*(1600, 일본 역사에서 도쿠가와 가의 패권이 확립된 전투)입니다. 오사카 성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언덕에서 일본군 30만 명이 격돌하는 일본 최대 전투가 벌어집니다. 이시다 미쓰나리를 따르는 사람들이 서군이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따르는 사람들이 동군이죠. - <세계사보다 더 재미있는 최진기의 전쟁사 2>, 최진기 지음 - 밀리의 서재
https://millie.page.link/psF9K5rRZYMmfbZT8

이시다 미쓰나리에겐 여러 결점이 있었고,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충신으로 꼽히던 가토 기요마사와 사이가 나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점이 악수로 작용합니다.
이시다 미쓰나리와 대립했던 가토 기요마사는 도쿠가와 이에야스 편을 듭니다. 이것은 나중에 서군의 패전 원인 중 하나가 됩니다. 그리고 한편으로 가토 기요마사와 사이가 나빴던 고니시 유키나가는 당연히 이시다 미쓰나리 편에 섭니다. - <세계사보다 더 재미있는 최진기의 전쟁사 2>, 최진기 지음 - 밀리의 서재
https://millie.page.link/481Kdu5Ai9ZFKzrr7


1592년 4월 13일 부산에 도착한 일본군은 1군부터 10군까지 군대를 나눠서 진격합니다. 1군은 고니시 유키나가(1558~1600, 가토 기요마사와 함께 선봉을 맡아 한양에 제일 먼저 입성한 무장)가 이끌고, 2군은 가토 기요마사(1562~1611, 일본 센고쿠 시대와 에도 시대에 걸쳐 활동한 무장)가 이끌고 올라오죠. - <세계사보다 더 재미있는 최진기의 전쟁사 2>, 최진기 지음 - 밀리의 서재
https://millie.page.link/PsKuXPYCjMnPtG98A

일본은 순천에서부터 울산까지 23개의 성을 쌓고 버팁니다. 하지만 전세는 점점 더 조명 연합군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결국 일본군이 지키고 있던 울산성 마저 포위되고 맙니다.
일본군이 농성전을 펼치던 23개의 성 가운데 순천에는 고니시 유키나가, 울산에는 가토 기요마사가 있었습니다. 이 두 사람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최측근으로 서로 라이벌 관계였습니다. 특히 가토 기요마사는 상인 출신에 크리스찬인 고니시 유키나가를 아주 싫어했습니다. - <세계사보다 더 재미있는 최진기의 전쟁사 2>, 최진기 지음 - 밀리의 서재
https://millie.page.link/DuAHUXv28HKVVH8G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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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보다 더 재미있는 최진기의 전쟁사 2 - 근세부터 현대까지 세계사보다 더 재미있는 최진기의 전쟁사 2
최진기 지음 / 이지퍼블리싱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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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년과 정유년 사이 6년의 소강상태

임진왜란은 크게 1592~1593년에 한 번, 1597년 정유년에 또 한 번 그리고 1599년에 일어난 싸움을 거쳐 총 세 번의 싸움으로 기록됩니다. 1597년은 정유년에 있던 전투를 의미하고, 1598년은 도망을 가다가 발생한 전투를 말합니다. 나머지는 전부 소강상태였어요. 1593년부터 1597년까지는 전투가 거의 없습니다. - <세계사보다 더 재미있는 최진기의 전쟁사 2>, 최진기 지음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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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은 벽제관 전투에서 이긴 후 한양을 비우고 부산 쪽으로 내려와요. 그래서 일본 본진은 부산에 자리잡게 됩니다. 명나라 본진은 평양에 있고, 일본의 본진은 부산에 있으니 아이러니한 상황입니다. 본진이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데 무슨 전쟁이 벌어지겠습니까? 그래서 6년 동안 전투가 없었죠. 그동안 농민들은 모내기하며 농사짓고 살았습니다 - <세계사보다 더 재미있는 최진기의 전쟁사 2>, 최진기 지음 - 밀리의 서재
https://millie.page.link/6S3z7d7kDn1bNTHx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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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보다 더 재미있는 최진기의 전쟁사 2 - 근세부터 현대까지 세계사보다 더 재미있는 최진기의 전쟁사 2
최진기 지음 / 이지퍼블리싱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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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의 3대 대첩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3대 대첩은 각각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 대첩(1592), 진주 목사 김시민의 진주성 전투(1592), 권율 장군의 행주 대첩(1593)이죠. - <세계사보다 더 재미있는 최진기의 전쟁사 2>, 최진기 지음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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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일본은 우리와 달리 일반적으로 벽제관 전투(1593), 칠천량 해전(1597), 울산성 전투(1597)를 임진왜란의 3대 전투로 꼽습니다. - <세계사보다 더 재미있는 최진기의 전쟁사 2>, 최진기 지음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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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에 대항하는 습지


 습지는 부와 도시를 산출했지만 이후 1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국가는 등장하지 않았다. 습지에서의 활기차고 다양한 생계 활동은 밭을 갈아 경작하는 농업 경관과 달리, 국가 형성에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았다. 

큰 강의 삼각주 지역이 초기 국가 형성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의혹을 확인하는 데는 나일강의 삼각주가 그 비교 사례를 제공한다. 초기 이집트 국가들은 삼각주에서 떨어진 강의 상류 지역에서 생겨났다. 삼각주 지역에는 이미 인구가 많았고 생계 자원이 풍부했지만 그것들이 국가 형성의 토대가 되지는 않았다. 그렇기는커녕, 삼각주 지역은 국가에 적대적이고 저항적인 지역으로 인식되었다. - P175

황허강을 따라 형성된 초기 국가들의 중심 역시, 유사하게, 끊임없이 변화하며 요동치는 삼각주 지역이 아니라 상류 지역에 있었다. 서곡농사이긴 했지만, 메소포타미아 국가들에서 밀과 보리가 중요했듯, 중국의 국가 형성 핵에서도 경작은 생존에 필수적이었다. 중국의 국가 건설 프로젝트는 복잡하고 다양한 황허강 삼각주와 그 사이에 있는 양쪽의 언덕진 땅덩이들의 야만 지역들)은 제쳐둔 채, 경작가능한 풍요로운 풍적토 지대 한 곳에서 또 다른 곳으로 폴짝폴짝 건너뛰었다고 할수 있다.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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