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탄생 - 왜 지금 다시 토크빌을 읽는가 대우휴먼사이언스 23
이황직 지음 / 아카넷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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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에는 천부인권으로서의 자유 개념이 없었다. 근대 자연법은 공적 참여와 무관한 개인의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인정한다.

"고대인들에게 자유는 공적인 업무 참여, 주권의 직접적 행사라는용어로 정의된다. 이러한 집단적 자유는 전체의 자유에 개인의 자유가 완전히 종속됨과 동시에 진행된다. 의견, 산업, 종교 등의 문제에서 어떠한 개인의 자유도 인정되지 않는다. (……) 반면에 근대에서개인들은 사적인 삶 속에서 독립된 존재로서 자유롭게 사고한다. 우리들의 자유는 사적인 독립의 향유로서 정의된다." (콩스탕, 「근대인의 자유와 비교한 고대인의 자유」(1819): 홍태영 (2006)의 옮김을 따름) - 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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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탄생 - 왜 지금 다시 토크빌을 읽는가 대우휴먼사이언스 23
이황직 지음 / 아카넷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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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우연히 실질적 평등이 초기 조건이었고 자유주의적 평등과 민주적 정치체제는 독립과 함께 확보되었다.

실질적 평등 때문에 민주적 정치체제가 가능했던 걸까? 아니면 평등에도 불구하고 민주적이었던가?

그럼 초기조건인 실질적 평등은 이후에 어떻게 될까? 민주적 정치체제에 의해 더 평등해질까? 아니면 더 불평등해지나?

전반적으로 유럽의 사회 상태가 점차 평등화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토크빌에게 신의 섭리처럼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역사의 지난 장면들을 훑어보면, 지난 700년 동안 일어난 거대한 사건들 중 평등을 증진시키는 데 이바지하지 않은 사건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I-서론)

 토크빌이 언급한 사례들을 읽다 보면 그의 판단을 존중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1. 십자군 전쟁과 영국의 내전은 귀족계급의 경제적·종교적 기반을 고갈시켰고, 2 이탈리아 도시의 자치공화국은 시민적 자유의 관념을 현실화했다. 3 총기의 발전은 전쟁터조차도 평준화시켰다. 귀족의 말과 갑옷은 총알 앞에서 무력해지고 말았다. 4 인쇄술과 우편제도의 발전은 정보의 유통 속도를 획기적으로 끌어올려 엘리트와 대중의 지식 수준을 평준화시켰다.5 종교개혁은 심지어 "구원의 길"마저 평등화시켰다. 6 마지막으로 신대륙의 발견은 구대륙의 가난한 사람들이 실제로 부유해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 P210

따라서 (당시의)자유주의자들이 근대의 계층간 불평등을 감안한 상태에서 민주주의 이론을 전개할 때 유일하게 인정할 수 있었던 평등의 관념은 자유를 위한 권리상의 평등equality in the right to liberty개념밖에 없었다. 이는 일반적 용어로는 ‘법 앞의 평등‘과 ‘권리의평등‘의 두 가지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자유주의적 민주주의 이론에서는 이 정도 수준으로 실질적 평등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물론 그것조차도 프랑스대혁명이라는 급진적 상황 전개 이후에비로소 가능했다.
- P212

전제적인 프랑스 사회에서도 자유는 있었다. 그러나 그 자유는 "어떤 대가를 치르고도 부유해지려는 욕구, 돈벌이에 대한 선망, 이익에 대한 애착, 안락과 물질적 만족의 추구" 뿐이었다. "전제정의 본질은 바로 이런 경제적 자유만을 유포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토크빌은 이 같은 이기심을 치유하는 방법 또한 오직 자유에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 P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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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직 지음 / 아카넷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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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특유의 습속으로서의 개인주의.
개인주의의 네 가지 유형과 그 변천.
각 유형이 공적 참여라는 구심력을 어떻게 지지 또는 해체하는지 따져볼 일.

벨라와 동료들은 먼저 미국의 개인주의 문화 분석을 위해 역사적으로 현상한 네 가지 삶의 지향들을 범주화했다. 성서 전통의 개인주의, 공화주의 전통의 개인주의, 공리주의적 개인주의,
표현적 개인주의가 각각 그것이다. 이 네 전통 중에서, 앞의 둘(성서적 공화적 개인주의)은 미국 건국 전후에 이미 존재하던 것이고, 뒤의 둘 (공리적 표현적 개인주의)은 주로 근대 산업화 이후에 나타난 것이다. - P204

 미국의 민주주의는..... 개인주의의 원심력으로 인해 해체될 수 있는 사회에서 개인의 적극적인 공적 참여라는 구심력을이끌어낸 독특한 체제였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미국인들은 자유로운 상태에서 공공의 영역에 참여하는 것을 제도와 습속의 차원에서 습관화했기 때문에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 P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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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직 지음 / 아카넷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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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크빌은 일반적으로 민주주의 국가에서 진행되는 평등화의 경향이 야기할 수 있는 부정적 양상, 곧 물질적 쾌락에의 탐닉과 이기적인 관심의 증가에대해 늘 우려했다. 하지만 적어도 당시 미국에서는 그런 우려가크게 없었다. 왜냐하면 미국의 개신교는 시민들이 도덕적 가치를 잃고 방황하지 않도록, 곧 물질 영역이 아닌 정신 영역의 중요성에 대해 언제나 경각심을 갖게끔 일깨우기 때문이다. 미국의개신교는 유형의 성례전 대신 무형의 가치에 충실하다. 이들은노동의 가치를 존중하고 현세의 행복을 존중한다. 민주주의와 평등화에 대해서도 지지한다. - P195

합리적 심리학의 관점에서 접근하는토크빌은 이들의 과도한 물질적 탐닉의 반대급부로 종교적 열정이 증가할 수 있다는 가설을 내놓는다. "이들의 영혼이 그들을구속하는 물질적인 속박을 돌연 끊어내고 장엄하게 하늘로 날아오르는 어떤 휴식의 순간들이 있기 마련이다." (II-2-12) 토크빌 시대와 현재 모두, 유럽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종교적 광신자들"이 미국에는 넘쳐난다.  - P194

첫째, "바르게 이해된 자기 이익의 원리"가 사회에 확산되어야 한다. 기본적으로 자본주의국가인 미국에서 공리주의는 명시적으로 그들의 습속을 구성하고 있다. 미국인들은 복잡한 윤리학적 통찰이나 덕성에 대한 고려 없이도 자기 이익이 보호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습관화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자기 이익을 확대하기 위해서 때로는 스스로 이기심을 절제하여 타인의 이익과공동의 이익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습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을 토크빌은 "바르게 이해된 자기 이익의 원리"라고 부른다.
(II-1-8) 

부의 증가와 공동선에 대한 관심이 병행될 때 사회의 관용성은 증가하고 국가에 대한 시민사회의 제어력은 커질 수 있기에, 이러한 변화는 민주적 습속이 자리 잡는 데 큰 기여를 할 수 있다. - P201

 평등화의 진행은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에게 동질감을느껴 역지사지할 수 있는 동정심을 낳게 하면서 결과적으로 습속을 순화시킨다.

 "사회에서 계층들이 서로 균등해지고 모든 사람이 거의 똑같은 방식으로 생각하고 느끼게 될 때, 이들 각자는 다른 모든 사람의 감성을 단 한순간에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상상력을 통해서 그들의 입장을 헤아릴 수 있으니 말이다.사람들의 동정심이 상상력을 통해 어떤 특정 개인에게로 전이되는 까닭에, 누군가 그의 동료의 사지가 찢겨나갈 때 그 자신이 고통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II-3-1) - 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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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대 뉴잉글랜드
- 상업적 이익 목적 대 이상적인 삶 지향

17세기 초 영국계 이주민들 정착지는 버지니아(남부)와 뉴잉글랜드(북부)로 대별된다. 1607년 제임스타운 건설로 시작되는 버지니아 개척민들은 투기적이고 모험심이 강한 사람들로 채워졌다. 이들은 대부분 처치 곤란한 방탕자와 사기꾼, 풀려난 하인들이었다. 물론 곧이어 장인과 농민들도 합류했지만 여전히 남부 정착지의 주류는 영국의 하층민 출신이었다. 결정적으로, 이들은 1620년경 최초로 20명의 흑인 노예를 수입하여 훗날 남부와 북부를 가를 커다란 사회문화적 차이를 만들었다.
- P87

북부의 정착민들은 이와 달랐다. 허드슨강 동쪽에 위치한, 이른바 뉴잉글랜드라고 불리는 코네티컷, 로드아일랜드, 매사추세츠, 뉴햄프셔, 버몬트, 메인 주에 정착한 이들은 이미 모국에서도 상당히 "유복한 계급"에 속했던 사람들이었다. 남부 식민지가 결혼하지 않은 남자들로 채워졌던 데 반해, 뉴잉글랜드의 정착지에는 ‘가족 단위의 단체‘ 이주객들이 주류를 이뤘다. 이들은 예외없이 모국에서 이미 훌륭한 교육을 받았고, 일부는 이미 유럽에서도 명망가에 속하는 지식인이었다. 

이들이 모국을 떠나 신대륙에 발을 디딘 이유는 단 하나, 이상적 삶에 대한 동경 때문이었다. 그것은 도덕적으로 고결한 퓨리턴의 길이자 정치적 권리를 지닌 각성된 시민으로서 프로테스탄트의 삶이었다. 1620년 11월11일,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에 도착한 청교도 분리파 계열의 첫 이주민들이 맨 먼저 한 일은 정치단체를 만들고 그 규약을 선포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메이플라워 서약 The Mayflower Compact‘이다. -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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