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 베넷은 뇌과학자가 아니다. 소위 잘 나가는 인공지능 기업을 운영하는 사업가이다. 그런 사람이 지구에서 어떻게 생명 탄생 이후 뇌가 만들어지고 인간의 지능이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게 되었는지에 대한 야심찬 책을 쓸 수 있었을까? 비전문가가 심리학, 진화생물학, 뇌과학, 고인류학에 대한 방대한 내용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는 주제의 책을 과연 쓸 수 있을까? 너무 재밌다고 읽어보라며 책을 건넨 형의 말에 반신반의하며 읽었다. 읽고 난 뒤 정말 너무 재밌다. 감탄, 감탄, 감탄했다. 그가 섭렵한 지식의 방대함과 함께 깊이 있게 각 전문분야를 이해한 그의 능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주말에 시간을 들여 완독한 후 맥스 베넷이 왜 이 책을 썼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서문에서 그는 본인이 읽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했다. 이게 무슨 말인지 읽기 전엔 몰랐는데 다 읽고 난 뒤 정확히 알게 되었다. 그는 호기심 천국의 다독가임에 틀림 없다. 방대한 분야를 읽고 난 다음에 그는 자신이 확실하게 이해했다고 생각한 내용의 독서 노트를 작성하고 싶었을 것이다. 중요한 내용에 밑줄 치고 잊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 내용을 정리해 두고 싶었을 게다. 충분히 공감이 되는 마음이다. 생각 없이 다독하는 사람이 책을 쓸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될 듯했다. 단지 요약 노트를 넘어서서 이 책은 기존의 논의에서 보지 못한 새로운 내용이 있다. 인공지능 전문가이기 때문에 쓸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기존의 전문 분야 연구자들은 인공지능의 전문가가 아니므로 지능의 기원과 관련된 세부 조각을 완성하고 큰 그림을 그려 넣었지만 인공지능의 측면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 인공지능 전문가인 맥스 베넷은 자신의 장점을 100% 발휘했다. 혁신의 1단계 조종에서는 초창기 인공지능 연구의 산물인 로봇 청소기 룸바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 2단계 강화라는 혁신에서는 머신러닝의 대표적인 과제인 패턴인식을 연결하여 설명한다. 3단계 시뮬레이션에서는 요즘 핫한 생성모델, 모델 기반 강화학습을 소환한다. 4단계 이후는 아직 인공지능이 가보지 않은 길이라고 그는 단언하고 있으나 그와 관련된 인공지능주의자들의 반론을 함께 싣고 있다. 나는 룸바가 나오는 대목에 처음으로 탄성을 질렀다. 맥스 베넷이 이 책을 썼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구나. 앞으로 이 책에 어떤 인공지능 얘기가 펼쳐질지 너무 궁금해졌고 맨마지막 LLM에 대한 설명까지 계속 흥미를 유지하며 읽었다. 글과 책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 듯 하다. 한편으로 궁금증을 자아내어 새로운 분야로 이끄는 게이트웨이가 되는 책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 지금까지 읽고 이해했던 내용을 새롭게 종합하여 그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게 만드는 책이 있다. 내게는 맥스 베넷의 책은 후자의 책이었다. 그 동안의 이 분야에 대한 내 난삽한 독서에 지도를 만들어준 책이었다. 게다가 나도 내가 모르는 분야의 책을 써보고 싶다는 욕심을 들게 했다. 이 책을 읽는 잡식성 다독가들도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할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