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강대국 흥망사 1500-1990
찰스 P. 킨들버거 지음, 주경철 옮김 / 까치 / 2004년 12월
장바구니담기


이주와 국가의 스타일에 관하여 마지막으로 언급할 사실이 있다. 프랑스인이 모험심이 강한 이주민이 아니라는 점이다. 1848년에 알제리로 이주했던 사람들은 주로 알자스와 로렌 출신으로서 이들은 프랑스인이기는 하지만, 독일인의 피가 섞인 사람들이다. 이와 반대로 포르투갈인들은 악명높은 유랑민이다(브라질의 사회학자인 질베르토 프레이레는 포르투갈을 '율리시즈의 국가'라고 표현했다). 이들은 인종적인 편견없이 해외에 나가서 어느 정도 항구적으로 거주하면서 현지인이나 심지어 노예 여인들과도 교제한다. 그 중간적인 성격인 제3의 패턴을 보이는 사람들은 이탈리아인들이다. 이들은 오랜기간 일하기 위해서 외국으로 나가지만, 결혼하기 위해서 한 번, 그리고 죽기 위해서 최종적으로 조국에 귀국한다. -46쪽

근대 초기에 대부분 큰 국가의 국왕들은 관료들이 부족했기 때문에 조세수취를 개인 금융가에게 "청부"했다. 프랑스의 재정가(financier)와 관리(officier)는 국왕에게 먼저 자금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그들 자신이 조세를 거두어서, 성공적일 경우 원금에다가 이윤을 더한 자금을 회수했다. 영국에서 1688년 명예혁명 이후 정부의 조세수취와 국채로 전환한 것을 "재정혁명(financial revolution)"이라고 한다.
...중략....
재정가들은 국왕의 부채에 대해서 우선 특별세나 독점권, 왕실의 보석류들 혹은 런던 시키나 파리 시청과 같은 반사적인 기관의 중재 등의 보증을 미리 받지 못하면 국왕에게 새로운 빚을 줄 때에는 경계했다. 많은 경우 외국의 전주들은 영국의 공식 독점업자인 모험조합(Merchant Adventure)과 함께 양모를 수출할 독점권, 혹은 에스파냐에서는 은을 수출할 권리 같은 특권을 받았다.
..중략...
정부는 징세청부나 독점만이 아니라 관직, 작위, 훈장 등을 판매하거나 교회 및 귀족의 재산을 압수, 매각하면서 자금을 조달하기도 한다.
..중략...
20세기에는 정부의 재정적자와 차입이 산업투자에 필요한 저축을 흡수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1800년 이전에는 이런 문제가 거의 없었다. 공업에 투자되는 자본은 상업이나 농업과는 달리 대개 지방 수준에서 이루어졌으며 소규모 액수에 불과했다....은행은 주로 교역에 자금을 융통해 주기 위해서 대부를 했다. 전시에는 정부부채가 급증했으며, 국민소득 중에 정부부채가 차지하는 비중은 간혹 평화시에 흑자를 통해서 줄어드릭도 했지만, 대부분은 지불거절이나 인플레이션을 통해서 줄어들었다.-53쪽

영국에서는 귀족들도 다른 국민들과 마찬가지로 세금을 낸다. 그러나 프랑스에서는 (그리고 에스파냐에서도) 귀족들은 전쟁에서 그들이 목숨을 걸고 싸운다는 이유를 들면서 왕과 사회에 대한 조세의무를 면제받는다. 이 차이는 섬 국가의 해상전투와 비교해서 육상전투의 노동강도가 훨씬 크다는 점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53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