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찮게 뉴스를 통해 미국의 부호가 얼마를 기부했다는 얘길 듣는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니 하면서 미국의 기부문화를 칭송하는 얘기가 국내 신문과 포탈 사이트에 오르내린다. 그런데 유럽의 부호가 기부했다는 얘긴 별로 듣지 못했다. 이러한 느낌은 통계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전한 뉴스에 따르면 2003년 기준으로 1인당 모금액을 국제적으로 비교하면 미국, 캐나다, 싱가폴이 1, 2, 3위를 차지하고 홍콩이 6위 한국이 7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에 비해 유럽의 선진국은 순위권에서 한참 멀리 떨어져 있다.

 

이러한 현상은 미국과 유럽의 사회보장시스템의 차이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유럽과 달리 사회보장제도가 잘 발달해 있지 않다. 정부지출을 통해 사회보장이 이루어지므로 정부재정의 규모는 사회보장제도의 척도가 될 수 있다. 2002년 미국의 조세부담률은 17.7%이다. 이에 비해 EU 15개국 평균은 29.1%이다. 조세에 사회보장부담금을 더한 국민부담률은 미국이 24.8%인데 비해 EU 15개국은 40.5%이다.

 

유럽의 부호는 세금을 통해 충분히 기부를 하고 있지만 미국의 부호는 유럽 기준으로 볼 때 세금을 많이 내지 않는다. 유럽의 부호는 세금을 많이 내고 그 세금이 가난한 사람에게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굳이 더 기부를 할 마음이 없지만, 미국의 부호가 기부를 활발히 하는 것은 가난한 사람이 눈에 밟혀서 기부를 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바로 이 지점에서 도덕의 잣대로 미국의 시스템을 높이 평가한다. 유럽의 시스템은 강제로 부자로부터 돈을 뺏어서 빈자에게 나눠주는 것이니 부자에게는 자신의 것을 빼앗겼다는 분노만 남기고 빈자는 정부로부터 일방적으로 제공받으므로 감사함을 모른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미국의 시스템은 도덕적이다. 부자는 자신의 양심의 결단으로 자선을 베풀고 빈자는 부자의 선의에 감동하며 감사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유럽의 시스템은 사후적 형평이란 관점에서 결과가 좀더 도덕적일진 몰라도 내부적으로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비도덕적으로 만든다. 이에 비해 미국의 시스템은 부자의 기부를 통해 형평에 접근하면서 사람의 심성과 인간관계를 도덕적이게 한다는 것이다.

 

과연 그러한가? 이와 관련하여 미국의 철학자 와써스트롬이 1960년대 초반의 미국 흑인의 민권운동에 대한 남부 백인들의 논변을 비판적으로 평가한 것을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당시 남부 백인들은 자신들이 흑인들의 복지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자주 주장했다. 마치 현재 미국의 부자들이 가난한 자들에게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고 이를 기부금의 형태로 표현하듯이 말이다. 와써스트롬은 이에 대해 “이런 방식의 사태 파악은 대부분 흑인으로 하여금 권리의 문제로서 자기 생각을 주장할 수 있는 기회를 부인한다. 이것은 그들에게 그들이 취급받는 방식에 대해 저항할 수 있게하는 신분을 부정한다. 만일 남부의 백인이 자신의 의무를 수행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단지 그와 그의 양심 사이의 문제이다"라고 지적했다.

 

의무에는 두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타인의 권리주장에서 유래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선심, 자비심, 높은 신분 등과 관련된 도덕적 의무이다. 남부 백인들은 도덕적 의무를 주장하는 전략을 통해 흑인의 권리를 부정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자신과 자신의 양심 사이의 문제인 도덕적 의무에는 지대한 관심을 갖지만 흑인의 권리에 대해서는 확답을 내놓지 않고 머뭇거리는 이유는 그리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부자들이 기부와 자선의 도덕적 의무를 주장하고 가난한 자의 권리를 부정하는 전략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도 이와 유사하다.

 

가난한 이가 권리를 갖는다는 것은 단지 가난한 이의 복리가 증진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공리주의적 의미만을 갖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풍부한 도덕적 의미를 갖고 있다. 권리 담지자로서의 자아 개념을 갖지 못하는 것은 인간 존엄성의 중요한 부분을 갖지 못하는 것이다. 인간을 권리의 소유자로 보는 것은 인격체를 목적으로 존중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하는 생각과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다. 미국의 철학자 파인버그는 "권리는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의 발로 서게 해주고 타인에게 떳떳하게 대하고 어떤 근본적인 방식으로 모두의 평등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자신을 권리의 담지자라고 생각하는 것은 과도한 긍지가 아니라 적절한 긍지를 갖는 것이며, 타인의 사랑과 존중을 받을 만한 가치를 가지기 위하여 필요한 최소한의 자존감을 가지는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생각만큼 풍부한 도덕적 함의가 있을 수 있겠는가?

 

이상에서 미국의 기부문화와 유럽의 복지제도를 비교하면서 어떤 사회가 더 도덕적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이에 답해보고자 했다. 가난한 이의 문제가 부자의 양심의 문제로만 존재하는 사회보다 가난한 이가 권리의 담지자로서 긍지와 자존감을 갖는 사회가 더 도덕적일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우리나라는 1998년 기존의 생활보호법 대신에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제정하여 사회복지제도를 정비한 바 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서 생활보장을 받는 이들을 수급권자라고 부르는데 비해 과거의 생활보호법에서는 이들을 생활보호대상자라고 불렀다. 두 호칭의 배후에 있는 철학적 견해의 차이가 이 글을 통해 널리, 특히 경제학자들에게, 인식될 수 있으면 좋겠다. 경제적 영역에서 권리라고는 소유권 이외에는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경제학자들은 기부와 사회보장, 양심과 가난한 이의 권리에 대해, 잠시 경제학의 효율성 대 평등이라는 논변을 잊고, 권리와 의무라는 정치철학적 시각을 통해 곰곰히 생각하는 기회를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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