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O를 둘러싼 몇가지 쟁점들


강화된 GATT


세계무역기구(WTO)는 무역장벽 설정에 대한 규범들에 동의한 회원국들로 구성되며 규범의 주요목적은 다른 나라의 이익을 해치는 방식으로 무역정책을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WTO는 기존의 GATT가 강화된 형태이다. 여기서 강화되었다는 것은 분쟁해결메카니즘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GATT의 경우 무역분쟁이 발생하고 한 나라가 제소할 경우 전문가 패널에 조사를 의뢰한다. 전문가 패널이 작성한 패널 보고서는 GATT 전회원국의 만장일치가 있을 때에만 발간된다. 이럴 경우 제소를 당한 회원국이 거부하면 패널 보고서는 발간될 수 없다는 점에서 분쟁해결에 있어서 무력한 경우가 많았다.

WTO에서는 거꾸로 WTO 전회원국이 만장일치로 패널 보고서를 거부할 때만 패널 보고서를 발간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WTO의 분쟁해결메카니즘은 보다 효과적인 것이 되었다.

GATT보다 강화된 또 하나의 특징은 WTO에서 다루는 영역이 넓어졌다는 것이다. GATT에서 다루지 않았던 서비스, 섬유와 의류, 농산물, 지적재산권 등이 WTO에서 다루어진다.


WTO의 승리자와 패배자


WTO의 활동으로부터 피해를 입는 집단은 누구인가. WTO가 국제적 거래를 증가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활동하므로 세계화로부터 피해를 입는 집단이 이에 포함된다. 그런데 WTO가 다른 나라의 이익을 해치는 무역정책을 제한하고 있으므로 추가적으로 무역정책을 수단으로 특정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측에게도 피해를 준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환경, 인권, 노동과 관련된 문제이다.


환경문제


예를 들어 새우-거북이 분쟁을 생각해보자. 미국 국내법은 멸종위기에 처한 바다거북을 구하기 위해 새우잡이에 종사하는 어부가 거북제거장치(turtle exclusion devices, TEDs) 없는 그물을 사용한 새우의 수입을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어느 새우가 이런 그물로 잡혔는지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특정 나라들의 새우 수입을 제한하는 형태로 시행되었다. 이들 수입제한국들은 WTO에 제소하였고 WTO는 “미국이 다른 나라의 이익을 해치는 방식으로 무역정책을 사용하였다”고 판정했다.

환경보호를 위한 미국의 주권적 행위가 WTO에 의해 침해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미국의 환경보호론자들은 WTO가 환경을 파괴하고 있다고 느낄 것이다.

그런데 다른 각도에서 문제를 볼 수 있다. 새우 금수조치는 지구 환경을 보호하고자 하는 미국의 정책으로 인한 비용을 전적으로 새우잡이국에게 부담시키는 것이다. 새우잡이국 어부들에게는 거북의 생존도 중요하지만 어부들의 생존도 중요하다. 미국 환경론자의 거북이에 대한 동정심을 위해 새우잡이국 어부들이 빈곤한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은 어부들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리고 어부들이 거북이를 잡기 위해서 새우를 잡는 것도 아니고 거북제거장치를 구입한 경제적 여유가 없기 때문인 점을 감안하면 환경보호를 위한 비용을 가난한 어부들이 부담한다는 논지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이런 점에서 WTO의 조치는 환경보호 비용의 부담을 명시적으로 논의할 수 있도록 강제하는 효과를 발휘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실제로 새우잡이국과의 분쟁은 미국의 환경단체가 돈을 들여서 새우잡이국에게 거북제거장치를 제공함으로써 실질적인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인권문제


미국 내에서 인권침해국과의 교역에 대한 반대가 많다. 인권운동가들은 인권침해국과의 무역을 금지하는 것을 통해 인권침해국의 인권개선노력을 끌어내고자 한다. 미국 행정부 역시 자신들에게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는 나라들을 인권침해국으로 규정하고 무역을 금지하는 방식의 정책을 종종 취해왔다. WTO의 규범은 이러한 점도 금지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인권운동가들은 WTO를 인권의 적으로 보기도 한다.

중국이 WTO를 가입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어 왔는데 그 이유도 이런 점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 미국 내 일부 인권운동가들은 중국의 인권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중국의 WTO 가입을 반대해 왔고 미 행정부 역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인권문제를 거론하면서 WTO 가입을 늦쳐 왔다. 2001년 중국이 WTO에 가입함으로써 이제 더 이상 미국이 중국의 인권문제를 이유로 무역제재를 가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북한의 WTO 가입 문제도 비슷한 상황이다.


노동기준


선진국의 노동조합은 무역과 노동기준(labor standard)을 연계시키길 희망해 왔다. 적절한 노동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나라와의 무역을 금지하자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그런데 노동기준은 도덕적 문제와 경제적 문제를 구별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매우 복잡하다. 노예노동을 사용하거나 아동노동을 착취하는 나라와의 무역을 금지하는 노동기준은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하지만 최저임금의 수준을 근거로 무역을 금지하는 노동기준은 이해하기 어렵다. 작업환경이나 부모의 허락을 받은 아동노동의 사용의 경우 애매모호하다.

개발도상국은 선진국 노동조합에서 주장하는 노동기준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본다. 선진국 노동조합이 자신들의 임금과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그 정도 작업환경과 임금으로도 충분히 노동하고자 하는 노동자의 임금과 일자리를 파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WTO는 노동기준과 무역을 연계하는 것에 반대한다. 높은 수준의 노동기준을 지지하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WTO는 착취자이지만 많은 개발도상국 지도자들과 경제학자들은 WTO의 결정에 지지를 보낸다. 


국가주권과 WTO


WTO가 주권을 제약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애초에 WTO의 목적이 주권을 제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WTO의 전신인 GATT는 각국의 관세율에 대한 주권을 제약하는 협정이었다. 각국은 무역의 이득을 극대화하기 위해 기꺼이 관세주권을 포기한 것이다. WTO가 새삼 문제가 되는 것은 GATT에 비해 더 폭넓은 문제들에 대해 주권 제약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WTO가 요구하는 것은 다른 나라의 이익을 해치는 방식으로 무역정책을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는 점에서만 주권을 제약한다. 게다가 WTO의 가입과 탈퇴가 자유롭다는 점에서 WTO의 주권 제약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 주권의 제약이 부담스러운 나라는 탈퇴하면 되기 때문이다.


개발도상국과 WTO


WTO는 개발도상국에게 유익한 측면만 가지고 있는 것일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WTO에서 규정하고 있는 반덤핑관세를 생각해보자. 덤핑이란 지나치게 싼 가격의 수입품을 지칭하는 것이다. 물론 그냥 가격이 싸다고 해서 모두 반덤핑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이 국내에서는 철강 1 톤을 1000달러에 판매하는데 미국에 수출할 때는 500달러에 판매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다른 나라에 파는 가격이 국내판매가격 또는 정상가격에 비해 지나치게 싸게 판매할 때 반덤핑관세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해외에 싸게 파는 이유는 무엇일까? 경제학의 이론에 따르면 수요가 가격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시장에서는 가격을 낮게 매기고 둔감하게 반응하는 시장에서는 가격을 높게 매기는 것이 기업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길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국내가격과 수출가격이 다른 것은 충분한 합리적 근거가 있다. 결국 반덤핑관세를 부과하는 동기는 주로 수입품으로부터 국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고 이것은 수입국의 수입품 소비자와 수출국의 기업에 피해를 주는 일이다. 자유로운 무역을 추구하는 WTO의 목적에 비추어볼 때 반덤핑관세조항은 저렴한 가격이라는 무기를 활용할 수 있는 개발도상국의 행동을 제약할 수 있다.

또 다른 예는 지적재산권 협정(TRIPs)이다. 지적재산권을 많이 가진 선진국 및 다국적기업은 지적재산권이 여타 나라들에서 잘 보장되길 희망할 것이다. 문제는 지적재산권 협정이 WTO 내에서 논의될 성질의 것인가이다. WTO 협정의 부속협정으로 지적재산권 협정이 존재한다는 것은 지적재산권을 무역정책과 연계시켜 보장하겠다는 것인데 이것은 이 글의 서두에서 밝힌 바와 같이 WTO가 무역정책을 다른 목표와 연계시키는 것을 최소화한다는 원칙과 충돌한다. 노동, 환경,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무역정책과 연계시키는 것을 반대한 것과 비교해 본다면 지적재산권에 대해서는 과도한 무역정책과의 연계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적재산권 협정이 WTO의 부속협정으로 포함되는 것을 개발도상국에서 동의한 이유 중의 하나는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으로부터의 섬유수입을 규제하기 위해 발동했던 다자간섬유협정(MFA)을 단계적으로 폐지한다는 약속 때문이었다. 지적재산권 협정을 내주고 다자간섬유협정 폐지를 약속받은 것이다. 그런데 현재 개발도상국 일각에서는 지적재산권 협정 대신 얻은 다자간섬유협정의 단계적 폐지의 실익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과 반WTO 운동


선진국의 NGO 입장에서 WTO는, NGO가 추구하는 가치를 실현시키기 위한 강력한 무기인 특정 국가에 대한 무역규제정책의 사용을 제한한다는 점에서 사회진보의 적일 수 있다. 하지만 선진국 NGO의 가치에 동의하지 않거나 가치에 동의하더라도 그 중요성의 정도에 동의하지 않는 개발도상국의 기업, 노동자 및 NGO는 반WTO 운동에 전폭적인 지지를 표명하기 어렵다. 또한 선진국의 대기업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일부 WTO 협정의 내용이나 투명하지 않은 의사결정절차는 개발도상국의 이익을 침해할 수 있다. 이러한 점들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 없이 무조건 WTO를 반대하거나 또는 반대로 영원히 변화될 수 없는 실체로 인정해 버리는 일은 우리들에게 그다지 도움이 안된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200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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