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는 90년대 중반 이후 디지탈경제와 함께 세계를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이다. 그런데 필자가 보기에는 세계화에 너무 많은 다양한 의미가 포함되어 쓰는 사람들마다 조금씩 다르고 사용되는 맥락도 다르다. 이러다 보니 모든 것이 세계화의 결과로 설명되고 비판되고 찬성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글에서는 우선 세계화를 간단하게 정의하고 이 정의에 따라 경제성장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제한적으로 검토해보고자 한다. 세계화는 국경을 넘어선 상품, 서비스, 자본, 노동력의 이동이 활발해지는 현상을 지칭하는 것으로 정의하기로 한다. 이것은 무역개방과 자본시장 개방 그리고 노동시장 개방의 정도가 심화되는 것으로 본다.

세계화는 근대세계의 시작과 함께 단선적으로 심화되어 온 것은 아니다. 많은 학자들은 세계화가 19세기에 오히려 지금보다 높은 수준이었다고 말한다. 19세기는 영국이 주도하는 자유무역체제가 확고하게 성립, 발전한 시기이다. 이 시기 국제무역은 빠르게 증가했고 해외자본투자도 매우 활발했다. 그런데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부터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까지 시기에 관세장벽을 쌓는 블록경제의 형성, 국제금본위제의 몰락 등과 함께 세계화의 정도는 대폭 감소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GATT(무역과 관세에 관한 일반협약)를 통해 점진적으로 관세가 인하되고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결제시스템이 확립되면서 무역량과 해외자본투자는 확대되기 시작했다.

이처럼 오늘날 세계화는 1945년 이후 점진적으로 무역개방과 자본시장 개방이 진행된 결과이다. 그런데 왜 1990년대 중반 갑자기 세계화가 전세계의 화두가 되어 유행하게 된 것일까?
이것은 무엇보다도 1995년 WTO(국제무역기구)의 발족에 영향받은 결과로 보인다. WTO는 기존의 GATT에 비해 강한 결속력과 강제력을 보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공산품 이외의 여러 분야 즉, 서비스와 농산물 등의 무역개방을 추진했다. 이것은 해외경쟁으로부터 보호받던 국내 이익집단들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세계화가 주목을 받은 또하나의 이유는 이것이 디지탈 혁명과 함께 진행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과거 텔레비젼이 세계 각국을 안방으로 가져온 혁명적인 역할을 했지만 인터넷은 일방향의 매체가 아닌 쌍방향의 매체로서 일상생활에서 전세계와의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미 세계는 상당 수준의 세계화를 달성하고 있었지만 피부에 와닿게 세계화를 보여준 것은 인터넷이었다.
이데올로기로서의 세계화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1980년대 이전까지는 세계는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대결구도로 해석되었다. 그런데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까지 진행된 동유럽과 소비에트 연방의 공산주의 체제가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로 변화하면서 더이상 세계를 냉전으로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냉전의 이데올로기를 대체하면서 등장한 것이 자본주의국가들 사이의 무한경쟁의 이데올로기이다. 세계화는 자본주의국가들 사이의 무한경쟁의 공간을 잘 표현하는 용어로 채택된 것으로 생각된다.

세계화를 폐쇄경제에서 개방경제로의 이행 또는 개방도의 확대로 이해한다면 세계화가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은 무역개방과 자본시장개방이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는 것으로 단순화될 수 있다. 세계화를 전세계적 시스템의 변화로 해석하고자 하는 분들에게는 너무 단순화된 해석으로 비칠 수 있겠지만 필자의 능력 부족으로 이 정도에서 논의에 그친다는 점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무역개방이 국민소득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경제학에서 이론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무역에는 반드시 이득이 있다". 따라서 개방을 하게 되면 국민소득이 상승한다. 개방은 소득수준의 상승 즉, 경제성장을 낳는다.

그런데 무역개방이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낳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소지가 있다. 개방 전과 개방 후를 비교할 때 무역의 이득으로 국민소득은 증가한다. 논란이 되는 것은 개방 후에도 성장률이 지속적으로 유지되어 개방하지 않았을 때의 성장속도에 비해서 개방시 성장속도가 더 빠른가라는 문제이다.

이러한 논란은 경제학이 태동하던 초기에 이미 논란이 되고 있었다. 독일의 경제학자 리스트는 영국의 자유무역 요구에 대해 독일이 이를 받아들인다면 면제품 제조업이나 철강업, 기계산업 등을 육성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농업에만 전념하게 되어 단기적으로 이득을 볼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후진국에 머무를 것이라고 주장했다. 리스트는 비록 지금은 비용이 높아서 영국 제품과 경쟁이 되지 않지만 정부가 영국으로부터 수입을 금지하고 일정기간 이 산업을 키운다면 비용이 낮아져서 영국 제품과 경쟁할 수 있게 되고 이렇게 된 후에 개방해도 늦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리스트의 주장을 유치산업 보호론이라고 부른다. 실제로 독일과 프랑스, 미국 등 영국에 이어 산업혁명에 성공했던 나라들이 일정기간 보호무역을 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보호무역의 긍정적 역할을 주장하는 이들은 자신들의 이론을 "동태적 비교우위의 이론"이라고 부르며 자유무역을 강조하는 이들의 이론을 "정태적 비교우위의 이론"으로 비판했다. 동태적 비교우위의 이론이란 비교우위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농업과 공업 중에서 지금 당장 농업이 비교우위가 있다고 해서 농업을 선택하게 되면 성장잠재력이 없는 농업에 영원히 머무르게 된다. 하지만 공업을 일정기간 보호하면 공업에 비교우위가 생길 수 있고 성장잠재력이 공업에 많기 때문에 장기적인 이득도 향유할 수 있다.

유치산업보호론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경제발전을 추구한 저개발국들에게도 널리 퍼졌다. 저개발국들은 중공업을 보호, 육성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자립적인 경제구조를 갖기를 희망했다. 이러한 정책을 수입대체산업화라고 부른다. 수입되는 중공업제품을 자국에서 생산하여 선진국제품을 대체하자는 것이다. 수입대체산업화를 추진한 라틴아메리카의 개발도상국들은 이후 큰 실패를 경험하였다. 이에 비해 지금 비교우위가 있는 제품을 많이 생산하여 수출하여 외화를 벌자는 수출주도산업화 정책이 한국과 대만, 싱가폴 그리고 홍콩에서 성공하였다. 개방을 한 나라들은 성공하고 폐쇄를 선택한 나라들은 실패한 것이다.

그런데 과연 한국의 수출주도산업화는 유치산업보호론과 전혀 무관한 것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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