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스는 자본주의의 비판이론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자본에 의한 노동의 착취를 강조한 이론으로 유명한데 그의 이론 내에도 경제성장이론이 내재되어 있다. 이 글에서는 맑스 자신의 성장이론이라기보다는 현대적 관점에서 재구성한 맑스의 성장이론을 간략히 설명하고자 한다.
우선 지적하고 싶은 것은 맑스의 성장이론은 솔로우의 성장이론과 기본 구조에서 비슷하다. 그는 인적자본이나 연구개발보다는 자본축적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또한 저축->투자->자본축적->생산증가->저축증가의 호순환구조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맑스의 이론과 솔로우의 기본모형은 다음의 두가지 점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첫째, 솔로우의 성장이론에서 자본의 한계생산이 체감한다는 것이 매우 중요한 요소인데 비해서 맑스의 성장이론에서는 명시적이지는 않지만 자본의 한계생산이 체감하지 않고 자본량이 증가함에 따라 비례적으로 생산이 증가한다는 가정이 숨어 있다. 맑스의 책 "자본론" 제2권에는 확대재생산 표식이라는 것이 있는데 논리적으로 무한한 성장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다른 변화가 없는 한 호순환이 둔화되지 않고 성장이 무한히 지속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맑스의 성장이론은 인적자본 모형이나 연구개발 모형과 유사하다.
둘째, 솔로우의 성장이론에서는 저축이 소득의 일정비율로 가정되어 있다. 이에 비해 맑스는 자본과 노동의 대립을 강조하고 계급구조를 강조했다. 계급구조는 저축과 투자에 강한 영향을 준다. 맑스에 따르면 임금은 노동자가 내일 다시 일할 수 있는 정도로만 주어진다. 따라서 노동자의 저축률은 0이다. 이에 비해 자본가는 넘쳐날 정도로 이윤을 소득으로 얻으므로 이 중에서 얼마를 소비하고 얼마를 저축=투자할 것이냐를 결정한다. 자본가의 저축률이 경제전체의 저축률에 큰 영향을 준다. 실제 경제전체의 저축률은 자본가의 저축률×이윤소득분배비율이 된다.
저축률 = 저축/소득 = 자본가의 저축/(임금+이윤) = (자본가의 저축/이윤)×이윤/(임금+이윤) = 자본가의 저축률×이윤소득분배비율
자본가의 저축률이 일정할 때 저축률을 결정짓는 것은 이윤소득분배비율이며 이윤소득분배비율은 자본가가 얼마나 착취를 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이런 점에서 맑스의 성장이론은 착취를 많이 할수록 성장이 빠르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흥미로운 점은 맑스의 이러한 성장이론이 절묘하게 경기변동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착취가 커져 이윤소득분배비율이 높아지면 저축률이 높아지고 이에 따라 자본축적이 빨라져 경제성장이 높아진다. 그런데 경제성장이 높아지면 자본가들 사이에서 노동자를 둘러싼 경쟁이 강화되어 실업률이 낮아진다. 실업률이 낮아지면 임금률이 노동자의 재생산을 위한 수준 이상으로 상승한다. 이것은 역으로 이윤소득분배비율을 낮추고 착취를 줄이게 된다. 여기서 새로운 반전이 시작된다. 이윤소득분배비율이 낮아져 저축률이 낮아지고 경제성장률이 떨어진다. 이에 따라 실업률이 높아지고 이것은 임금률을 다시 낮추게 된다. 이같은 경제성장과 경기변동을 동시에 설명하는 맑스의 이론은 현대 경제학에서도 큰 주목을 받았다.
다른 각도에서 볼 때 맑스의 이론은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분배가 희생되어야 하고 분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경제성장을 포기해야 한다는 함의를 갖는다. 이러한 이론을 이윤압박설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맑스의 이론을 현실에 적용하고자 했던 서구 좌파들에게 매우 부담스러운 것이었다. 서구 좌파들은 분배를 우선시하는 정책을 추구했는데 우파들로부터 성장은 어떡하냐는 비판에 대해 적절한 답변을 이윤압박설로부터 끌어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해 케인즈의 거시경제학을 맑스의 이론에 접목시켜 분배가 성장을 돕고 성장이 분배를 돕는 것이 가능하다는 세련된 좌파적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차후로 미루기로 하자.
맑스의 성장이론이 무한한 성장을 보여준다고 필자가 해석하는 것은 사실 맑스의 자본주의 붕괴론과 모순된다. 맑스는 이윤율이 추세적으로 저하되어 자본주의가 위기에 빠진다고 주장하였다. 맑스의 이윤율 저하설은 제2권의 확대재생산에서 논의하지 않은 기술변화와 관련되어 있다. 맑스는 자본가들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기술발전을 항상 추구하는데 일반적으로 기술발전은 생산량 증가보다 더 빠른 자본량의 증가를 수반하게 된다고 가정했다. 이러한 자본량의 증가는 마치 자본의 한계생산 체감처럼 이윤율(또는 이자율)의 하락을 가져온다. 솔로우는 기술이 불변일 때 자본량의 증가가 이자율 하락을 가져온다고 말하고 기술발전은 오히려 이자율 하락을 저지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던 것과 반대로 맑스는 기술이 불변일 때 자본량 증가는 이자율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지만 기술이 발전하면 자본량이 상대적으로 빠르게 증가하여 이자율을 하락시킨다고 말했다. 맑스에게 있어서 이윤율의 하락은 기술발전이 존재할 경우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결국 기술변화를 고려한 맑스의 성장모형과 기술변화가 없는 솔로우의 성장모형은 장기적 균제상태에서의 성장 정지라는 측면에서 유사해진다. 사실 자본주의의 성장이 멈춘다는 논리는 고전파라고 불리었던 당시 경제학자들 - 아담 스미스, 리카도 - 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