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솔로우의 모형에서 언급한 것처럼 경제성장의 요인분석을 통해 지식과 기술이 경제성장에 중요하다는 점에 대한 인식이 공유되면서 지식과 기술이 어떻게 축적되는지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이런 관점에서 인적자본을 강조한 이론은 교육비와 훈련비의 지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비해 기술혁신을 강조하는 이론은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창출하는 연구개발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기술혁신을 강조하는 이론은 아무리 교육비와 훈련비를 많이 들이더라도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창출하지 못한다면 기껏해야 이미 있던 지식과 기술을 잘 보존하고 전달하는 수준에 머무르게 되고 이것으로는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인적자본만을 강조하는 이론을 비판한다. 이런 평가에 대해 인적자본 모형을 옹호하는 이들은 자신들의 이론 내에도 새로운 지식의 창조가 포함되어 있다며 불평하겠지만 새로운 지식의 창조의 동기나 구조에 대한 설명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점은 인정할 것이다.

새로운 지식과 기술은 연구개발(R&D)에 대한 투자를 통해 창출된다. 그렇다면 기업이나 사람들이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개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새로운 지식은 기존 제품의 성능을 높이거나 생산비를 절감시키거나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낸다. 새로운 지식의 상업화에 성공하면 기존 지식으로 생산하고 있는 회사의 제품수요를 빼앗아서 자신의 제품수요로 만들 수 있고 이를 통해 큰 돈을 벌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신만이 새로운 지식을 이용할 수 있을 경우 보다 나은 지식이 등장하기 전까지 일시적이나마 독점적 지위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더 나은 지식을 자신이 개발하면 독점적 지위를 계속 유지할 수 있지만 이에 실패하면 다른 이가 독점적 지위를 차지하게 된다. 제약회사 파이저는 비아그라의 개발을 통해 막대한 이윤을 누리고 있고 다른 제약회사는 비아그라보다 더 나은 제품의 개발을 위해 막대한 연구개발비를 투자하고 있다. 이들 경쟁사들 중에 한 회사가 더 나은 제품의 개발에 성공하게 되면 파이저는 더 이상 이윤을 누릴 수 없고 새로운 이윤은 신제품 개발에 성공한 기업에 돌아간다. 이러한 과정은 유명한 경제학자 슘페터가 말한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에 다름아니다.

창출된 지식은 한번 만들어지면 새로 만들어질 필요가 없으며 지식의 복제비용은 지식의 창조비용에 비해 매우 낮다. 새로운 지식 이후에 만들어지는 지식은 이미 만들어진 지식의 기초 위에서 이보다 더 나은 것이 만들어진다. 지식은 퇴보하지 않으며 연구개발에 의해 항상 늘어난다. 이에 비해 교육과 훈련은 기존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기본목적이므로 교육과 훈련만 계속한다고 해서 지식이 늘어나지는 않는다.

연구개발을 강조하는 모형도 솔로우의 기본모형의 논리구조인 저축->투자->자본축적->생산증가->저축증가의 호순환구조를 내포하고 있다. 다만 여기서 투자항목이 물적자본투자나 인적자본투자에 한정되지 않고 연구개발투자가 포함된다. 그리고 자본도 물적자본과 인적자본에 한정되지 않고 지식자본(knowledge capital)으로 확장된다.

시장의 크기(market size)가 연구개발 모형에서 매우 중시된다. 연구개발비용은 일정량으로 고정적으로 들이지만 연구개발로 얻는 수익의 크기는 시장의 크기에 비례하여 증가하기 때문이다. 시장이 커질수록 연구개발의 유인이 커지고 이에 따라 연구개발이 활발하게 진행되어 빠른 지식의 축적이 이루어질 수 있다. 반대로 시장이 작을 경우 연구개발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에 따라 인구가 많고 소득이 높은 미국과 같은 큰 나라에서 연구개발이 활발하게 진행된다는 결론을 유도할 수 있다. 그렇다면 큰 나라는 작은 나라보다 항상 더 빨리 성장할까? 연구개발을 강조한 모형이 처음 나왔을 때는 이런 식의 결론이 성급히 제안되었다. 하지만 국제무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상황에서는 나라의 크기가 시장의 크기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한국의 삼성전자는 한국 시장만을 대상으로 연구개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시장을 대상으로 연구개발을 하고 있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나라의 크기가 성장률의 고저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연구개발 모형은 지식의 소유권이 확립되어 있는지 여부에 대해 강조한다. 새로운 지식이 만들어지더라도 지식을 만든 사람이 이 수익을 충분히 갖지 못한다면 향후 새로운 지식을 만들 유인이 감소하게 된다. 예를 들어 소프트웨어의 불법복제가 만연되면 소프트웨어의 개발의욕이 떨어진다. 시장의 크기는 지식의 소유권을 어느 정도 확보할 수 있는가, 지적재산권이 얼마나 보장되는지에 의존한다. 선진국에서 특허제도가 확립된 점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대목이며 선진국이 후진국에게 지적재산권 보장을 요구하는 이유를 생각하게 만든다.

1990년대 정보기술혁명이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면서 신기술, 새로운 지식이 갖는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이러한 물결 속에서 연구개발을 강조한 성장모형 역시 급속히 성장하고 확산되었다. 하지만 1990년대 말 미국 닷컴 거품이 꺼지면서 연구개발을 강조한 모형에 대한 신중한 접근이 서서히 힘을 얻어갔다. 새로운 기술과 지식이 창조되더라도 이것이 한순간에 경제전체의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 걸쳐 서서히 확산되는 현상이 인식되었다. 지식의 창조는 지식의 확산이라는 보완적 과정을 필요로 하며 이러한 확산과정은 인적자본과 물적자본의 축적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나아가 왜 지식이 이미 존재하는데도 선진국의 국경을 넘어서 후진국으로 쉽게 확산되지 못하는지에 대한 의문과 연구도 커져갔다. 연구개발 모형은 새로운 지식이 어떤 경제원리에 의해 창출되는지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솔로우의 모형이 설명하지 않은 바로 그 문제 - TFP란 무엇인가 - 를 직접 풀고자 했다는 점에서 큰 기여를 했지만, 지식의 창조가 곧바로 경제성장은 아니라는 점에서 과도한 해석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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