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에는 노동과 자본이 필요하다고 쉽게 얘기하는데 이때 노동은 단순한 육체노동을 지칭하고 자본은 물적자본을 지칭한다. 그런데 단순한 육체노동의 투입과 물적자본 이외에 숙련과 기술도 생산에 영향을 준다. 그런데 숙련과 기술은 사람을 통해서 투입되므로 노동과 유사한 측면이 있지만 물적자본처럼 교육이나 훈련과 같은 투자에 의해 축적될 수 있다는 점에서 자본의 성격도 가지고 있다. 경제학에서는 노동과 물적자본 이외에 생산에 영향을 주는 숙련과 기술을 인적자본(human capital)이라고 부르고 있다.
인적자본의 개념은 시카고 대학의 벡커 교수에 의해 처음으로 제기되었고 이후 노동경제학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응용되었고 이후 경제성장론에도 적용되었다. 인적자본이 경제성장론에서 주목받게 된 것은 선진국은 노동자의 교육수준이 높고 후진국은 교육수준이 낮다는 자명하면서 단순한 사실 때문이다. 교육수준의 차이가 선진국과 후진국의 일인당 소득수준 격차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인적자본이 경제성장론에 들어온 것이다.
솔로우의 경제성장모형을 약간 수정하면 그 안으로 인적자본이 들어올 수 있다. 앞선 로빈슨 크루소우의 예에서 크루소우는 2시간을 낚시대(물적자본)를 만드는데 사용한다고 가정했는데 이것을 바꾸어서 1시간을 낚시대 제작에 쓰고 1시간은 집중력을 키우기 위한 요가연습에 쓴다고 하자. 집중력 강화 훈련을 지속하면 점점 집중력 수준이 올라간다. 그리고 집중력 수준이 높을수록 같은 6시간의 노동시간과 낚시대 수로 더 많은 물고기를 낚을 수 있다.
솔로우의 경제성장모형에서는 생산요소로서 노동과 물적자본이 있고 물적자본은 저축에 이은 투자에 의해 축적된다고 말했다. 그런데 소비하지 않고 남은 돈을 투자할 때 반드시 물적자본의 축적을 위해 투자할 필요는 없다. 인적자본의 축적에 투자할 수도 있다. 가계 소득은 소비와 저축으로 나뉘어 사용되는데 소비되지 않은 돈은 물적자본의 투자 외에도 인적자본의 투자에도 사용된다. 학교 등록금이나 학원비 등등이 인적자본의 투자비에 해당된다. 저축한 돈이 물적자본과 인적자본의 축적에 사용되고 물적자본과 인적자본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생산이 늘어나고 이에 따라 저축도 늘어나서 다시 물적자본과 인적자본의 수준이 높아지는 호순환이 계속되고 이 과정에서 경제성장이 지속된다. 물적자본이 감가상각이 되는 것처럼 인적자본도 감가상각이 된다. 인적자본의 감가상각이란 계속적인 훈련을 하지 않으면 숙련도도 떨어지고 기억력도 감퇴되는 것을 말한다. 물적자본과 인적자본의 수준이 낮을 경우에는 투자량이 감가상각량보다 커서 자본의 순증가가 이루어지지만 자본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감가상각량이 커져서 결국 자본의 순증가가 없는 균제상태에 도달하게 되어 경제성장은 멈추게 된다.
이처럼 인적자본이 도입된 솔로우 모형은 솔로우 모형의 약점을 보완하는 역할을 했다. 앞서 솔로우 모형을 이용해 경제성장을 설명한 결과 자본증가의 영향이 크지 않고 설명되지 않은 기술진보의 영향이 컸다고 말했다. 물적자본의 증가만을 고려했을 때 그러했고 인적자본도 함께 고려했더니 설명되지 않는 요소의 영향 중 상당부분이 인적자본의 영향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경제성장 = 노동량 증가 + 물적자본 증가 + 설명되지 않은 부분 설명되지 않은 부분 = 인적자본 증가 + 정말 설명되지 않은 부분
인적자본의 도입은 솔로우 모형을 낭떠러지에서 구원했다. 그런데 인적자본은 이에 그치지 않고 솔로우 모형에 심각한 변형을 가져오게 되었다. 솔로우의 기본모형은 기술에 변화가 없는 한 저축->투자->자본축적->생산증가->저축증가의 호순환과정은 점차 둔화되어 경제성장이 멈추게 된다는 예측을 담고 있다. 앞서 설명한 인적자본이 도입된 솔로우 모형 역시 이러한 예측을 공유하고 있다. 그런데 자본이 생산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가정을 약간 수정했더니 놀랍게도 저축->투자->자본축적->생산증가->저축증가의 호순환과정은 둔화되지 않고 영원히 지속된다는 점이 발견되었다. 이런 소식은 처음에 좋은 소식으로 보였다. 왜냐하면 균제상태에 도달한 듯 보이는 미국조차도 매년 2% 정도의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계속되었는데 이것을 경제학이 잘 설명하지 못하는 기술의 영향으로 두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잘 설명할 수 있는 자본의 영향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이론적으로 우월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가정을 수정했다는 것일까? 독자는 한계생산 체감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노동의 한계생산 체감이란 노동 투입량을 한단위 더 추가할 때 늘어나는 추가의 생산량이 노동 투입이 늘어남에 따라 점점 줄어든다는 것이다. 자본의 한계생산 체감도 이와 유사하다. 로빈슨 크루소우의 예에서 노동시간을 6시간으로 둔 채 낚시대가 하나씩 늘어남에 따라 생산량이 6->10->13->15개로 변화했는데 이때 생산량의 증분은 4->3->2로 줄어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자본의 한계생산 체감이다. 단, 하나의 생산요소의 한계생산 체감을 말할 때는 항상 여타 생산요소의 양은 불변으로 고정되어 있음에 주의하라.
자본을 물적자본과 인적자본으로 나누는 경우에도 한계생산 체감의 원리는 작용한다. 경제학자들은 물적자본의 한계생산이 체감하고 인적자본의 한계생산도 체감한다는 점에 대해 대부분 동의한다. 물적자본량은 고정되어 있고 교육수준이 올라갈 때 한계생산은 체감하며 교육수준은 불변이고 물적자본량이 늘어나면 한계생산은 체감한다.
그런데 물적자본과 인적자본을 합친 자본 전체가 한계생산 체감의 속성을 가지고 있을까? 쉽게 말해서 단순노동은 불변인데 물적자본이 2배로 늘고 인적자본도 2배로 늘게될 경우 생산량은 2배로 늘까, 아니면 2배 이하로 늘까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해서는 경제학자들의 의견이 일치하고 있지는 않다. 어떤 경제학자들은 한계생산 체감의 원리가 작용하여 2배 이하로 는다고 주장하는데 비해 다른 학자들은 2배로 늘어 한계생산 체감이 작용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한계생산 체감이 작용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물적자본의 증가가 인적자본의 생산성을 증가시키고 인적자본의 수준 상승도 물적자본의 생산성을 증가시키는 상호보완효과가 매우 크다는 점을 강조한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바 있는 루카스 교수는 이런 의문을 말한 바 있다. "자본량이 많으면 금리가 낮고 자본량이 적으면 금리가 높다. 이론적으로 선진국은 금리가 낮고 후진국은 금리가 높다. 그런데 왜 선진국의 자본이 금리가 높은 후진국으로 대량으로 흘러들어가지 않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해 여러 가지 답변이 가능하겠지만 루카스 교수 본인이 내놓은 답변은 인적자본 때문이라는 것이다. 선진국과 후진국의 인적자본이 동일한 수준이라면 자본량이 많은 선진국의 금리가 낮을 것이지만 선진국의 인적자본 수준이 높아서 같은 물적자본이라도 선진국에서 훨씬 높은 생산성을 발휘하게 되고 따라서 선진국의 금리가 후진국보다 낮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자본 전체적으로도 한계생산 체감이 있을 경우에는 결국에는 성장이 멈추는 상태로 귀결되며 자본 전체적으로는 한계생산 체감이 없다면 저축->투자->자본축적->생산증가->저축증가의 호순환과정은 둔화되지 않고 영원히 지속된다. 물론 후자의 경우에도 자본축적이 낮은 수준일 때는 성장률이 높고 자본축적과 함께 성장률이 떨어지고 자본축적이 일정궤도에 이르면 성장률이 일정하게 유지된다. 이런 점에서 전후 독일과 일본의 경제기적을 여전히 설명할 수 있다.
인적자본이 경제성장모형에 도입되면서 경제성장이론은 보다 많은 사실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고 이론적으로도 많은 함의와 예측을 제안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내놓은 설명들에 대한 반론과 의문도 만만치 않게 늘어 갔다. 인적자본에 대항한 대표적인 이론이 연구개발과 기술혁신을 강조하는 성장이론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회에서 계속 논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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