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고향에 다녀왔다. 내 고향은 경남하고도 바닷가이므로 서울에서 내려가려면 무궁화열차 기준으로 5시간이 넘게 걸린다. 기차를 타고 고향에 갈 때면 대구에 이르면 엉덩이가 아프고 어깨가 뻐근하고 머리가 찌끈거린다. 3시간 넘게 기차를 타본 사람은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알 것이다. 그런데 4월 1일 고속철도가 개통되어 타게 되었는데 예전의 대구 정도의 시간에 고향을 갈 수 있게 되었다. 솔직히 너무 기뻤다. 다녀오면서 고속철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특히 호기심 많은 조카와 같이 내려간 덕택에 조카가 물어보는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따져보게 되었다. 고속철도 기술을 가진 나라는 일본, 프랑스, 독일이다. 놀랍게도 세계 최초로 고속철도를 만든 나라는 일본이다. 1964년에 만들었으니 대단한 나라임에 틀림없다. 이 글에서는 KTX가 갖는 산업적 의미를 기술문제와 관련하여 상상해 보고자 한다.


KTX의 가장 큰 문제점은 터널을 지날 때의 진동과 소음이다. 귀가 별로 좋지 않은 나로서는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진동과 소음이 클까를 생각해 보았는데 그 원인의 하나는 아마도 원천기술이 프랑스로부터 가져온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는 대체로 넓은 평야를 가진 곳이다. 그래서 터널을 만들어야할 필요가 없었고 이 때문에 터널에서의 소음과 진동 문제를 해결할 기술을 충분히 갖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산악지형이고 고속으로 달릴 수 있기 위해서는 우회하는 곡선 노선보다 직진하는 노선이 필요하므로 터널이 필수불가결했을 것이다. 프랑스에 이에 대한 기술이 없기 때문에 현재와 같은 상태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렇다면 터널의 진동과 소음을 방지하는 기술을 가진 나라는 어딜까? 아마도 일본일 것 같다. 그렇다면 왜 일본의 신칸센으로 정하지 않고 프랑스의 떼제베로 정했던 것일까?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프랑스를 선정한 이유 중 하나는 독일과 일본에 비해 프랑스가 기술이전에 적극적이었기 때문이다. 4월 1일 고속철도가 개통된 후 프랑스에서는 우리보다 더 요란하게 한국의 고속철도 개통을 언론에서 다루었다고 한다. 프랑스에서 얘기하는 것 중의 하나가 기술이전이 너무 많이 이루어져서 한국과 다른 나라 고속철도 사업과 관련해 입찰경쟁을 한다면 한국의 저가에 밀려서 프랑스가 수주에 실패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고속철도 제조사 로템에 따르면 고속철도의 국산화율은 95%라고 한다. 이런 점을 종합해 볼 때 10여년 넘게 끌어온 고속철도 사업을 통해 우리는 상당부분 고속철도의 기술을 확보했다는 생각이 든다.


휴대전화 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던 90년대에 나는 휴대전화 사업은 기본적으로 내수용 사업이므로 수출주도적인 우리 경제에 큰 도움이 안되는 사치재 생산사업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런데 오늘날 휴대전화 사업은 어떠한가? 교환기 제작-휴대전화 생산-통신서비스로 이어지는 사업 전체가 수출산업으로 한국경제를 이끌어가는 성장동력으로 활발하게 발전하고 있다. 내 생각이 무척이나 짧았던 것이다. 고속철도 사업을 단순히 국내 운송서비스 사업으로 보아서는 안된다. 고속철도 사업 역시 철로 건설사업-고속철도 차량 제조업-고속철도 운행 서비스업이 결합된 사업이고 각 사업영역이 수출가능한 것들이다.


고속철도의 수출이 예상되는 지역은 일견 중국으로 보인다. 중국은 광대한 국토 때문에 고속철도의 필요성이 한국에 비해 훨씬 크다. 물론 비용 대비 편익을 보아야 하므로 기존 철도를 개량하고 복선화하는 것이 더 나은 것 아닌가라는 의문도 가능하고 미국의 예에서 보는 것처럼 항공이 압도할 수도 있다. 만약 중국이 고속철도를 발주한다면 일본과 독일 그리고 프랑스는 우리의 경쟁상대가 될 것이다. 중국이 고속철도를 발주할 시점을 감안하여 대등한 입찰 경쟁자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고속철도 기술의 축적이 가장 중요하다. 원천기술을 가진 프랑스에 비해 우리가 갖는 장점은 첫째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입찰할 수 있다는 것과 둘째, 산악지형을 포함한 악조건에 적응하는 철로 건설 및 차량 제작기술이다. 전자는 우리의 경제발전단계에서 당연한 것이지만 후자는 지금부터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기술발전은 실험실에서 이루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실험실에서 탄생한 기술이 실제로 응용되기 위해서는 실제로 만들어서 사용해 보아야 한다. 기술발전 과정에서 생산자와 사용자 사이의 상호작용은 매우 중요하다. 사용자는 단순히 만들어진 제품을 수동적으로 사용하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제품의 사용을 통해 제품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생산자에게 제언하는 존재이며 생산자는 사용자의 지적을 흡수하여 더 나은 제품을 내놓게 된다. 뛰어난 생산자 옆에는 뛰어난 사용자가 있다. 고속철도와 관련된 기술에서도 이 원리는 적용된다. 이런 점에서 모든 구간이 완공되지 않았더라도 고속철도를 실제로 운행하는 것은 필요하다. 우리는 최초의 혁신자가 아니라 추격을 해야 하는 후발자이다. 기술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완비하고 출발하기보다 서툴지만 실제 사용해 가면서 오류를 정정해 가는 약간은 위험한 방식이 기술축적에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고속철도를 운행하면서 철도서비스 관계자들은 기존 철로와 기관차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제안하며 고속철도 차량 제작자와 철로 건설회사들은 이런 제안을 어떻게 반영하여 기술을 발전시킬 것인지를 연구해야 한다. 특히 산악지형에 맞는 기술을 축적하는 것이 프랑스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하나의 요인이 될 것이다. 한국의 독자적인 입찰이 어렵다면 프랑스와 공동으로 입찰에 참여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경우에 한국이 수주의 과실을 어느 정도 확보하려면 프랑스가 부족한 부분에서 기술력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KTX 사업은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요되었다. 사업을 시작하게 된 배경에 대한 국민의 의구심도 많았다. 하지만 어쨌거나 KTX는 만들어졌으니 이미 투입된 비용에 대해 골몰해서는 안된다. KTX로부터 우리가 끌어낼 수 있는 최대 잠재적 편익을 목표로 상정하고 이를 위해 어떤 일부터 시작할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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