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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이론의 한국경제
김광수경제연구소 엮음 / 김광수경제연구소 / 2003년 5월
평점 :
절판
서점에 나와 있는 한국경제에 대한 개설서의 최대 약점은 너무 많은 정보를 교과서적으로 해설하고 있다는 것이다. 역사와 구조에 대한 설명이 잔뜩 들어 있는 글들을 읽다보면 뭔가 알맹이가 빠진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그 알맹이는 바로 지금 당장 문제가 되는 현안에 대해 구체적인 분석과 정책대안이다. 개설서를 쓴 저자들은 나름대로 이에 대한 생각을 갖고 있겠지만 개설서에서 이를 다루기에는 글이 너무 길어지고 글의 흐름 상 튀기 때문인지 본문의 짧은 언급이나 각주에서 간단히 언급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다 보니 이런 개설서류의 책을 읽은 사람들은 큰 흐름이나 큰 그림은 알겠지만 지금 신문과 방송에서 토론하고 논쟁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는 푸념을 하게 된다.
이 책은 바로 이런 불만을 가진 이를 위한 책이다. 책에서 다루는 주제들은 구체적인 현안들이다. 발전노조의 파업으로 전국민적 관심사가 되었던 한전 민영화 문제라든가 최근 수년간 폭등한 아파트 가격 문제, 한일 FTA 문제, 고갈되고 있다는 국민연금 등 사상이나 입장만으로 단칼에 잘라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들의 구체적인 실상들을 설명하고 분석하며 정책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의 또하나의 장점은 눈높이를 확 낮추어 일반인들에게 경어체로 알기쉽게 차근차근 설명하는 문체에 있다. 쟁점을 명확히 부각시키고 군더더기를 빼버렸고 어려운 경제용어를 절제하고 써야할 경우 쉽게 풀어서 설명한 점들은 경제에 대해 잘 모르는 일반인들에게 친절한 책의 모범으로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명확한 자기논리와 실증자료를 가지고 구체적 현안을 일반인에게 알기쉽게 설명하는 책이 거의 없는 현 상황에서 이 책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책이다.
그렇다고 이 책에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처음 나온 것은 늘 그렇지만 어딘가 모르게 허술하다. 이는 경쟁자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과 비슷한 주제를 다루면서 다른 논리와 다른 대안을 제시한 책이 서너권만 더 있었다면 이 책의 완성도는 더욱 높아졌을 것이다. 예를 들어 국민연금의 대안에 대한 설명에서 저자는 현재의 시스템이 과도하게 소득재분배 기능이 크므로 문제이고 소득재분배 측면을 최소화하고 연금소득자에게서 일률적으로 세금을 거둬 일정 소득 이하의 사람들에게 보조하자고 제안하였다. 내가 보기에는 현재의 시스템의 문제는 소득재분배 기능이 아니라 모든 소득계층에게(심지어 고소득계층에게도) 너무 높은 연금액을 약속하고 있는 것이다. 주택투기 문제에 있어서도 총량적인 공급 측면의 유인을 강화하는 문제에 집중하고 있는 것 같은데 현재 국민들이 민감하게 관심을 갖는 강남북, 또는 서울과 지방의 불평등의 문제에 대해서 설명이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한전 민영화에 대한 설명은 내가 보기에 개념과 분석도구의 혼란이 심해 보인다는 점에서 여론을 호도할 위험이 있다.
내가 이 책에 대해 느끼는 부족함은 이 책의 저자의 책임은 아니다. 이보다 앞서 말한 경쟁자가 없다는 시장구조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일반인을 청중으로 한 활발한 학문적 토론과 경쟁의 부재의 산물일 따름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위쪽만 바라보며 관료와 전문가집단에게만 보고서를 쏟아낼 뿐 정작 주인인 일반청중에게는 말을 걸지 않는다. 부디 후발자들이 많이 참여하여 이 책의 부족한 점을 비판하고 새로운 대안을 일반인의 눈높이에서 설명하는 책들이 나오길 바란다. 그렇게 된다면 이 책은 판을 거듭하여 더 나아질 것이고 경제 현안에 대한 대중용 서적의 장을 열었다는 찬사를 한몸에 받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