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인에 따르면 디지털 정보 혁명은 정보량 증가-> 정치 참여 증가로 이어지지 않았다. 정보 선택 증가 -> 양극화로 이어졌다. 정치 의제에 대한 숙의보다 반향실 속 정체성 정치만 남았다.
인터넷은 말 그대로 정보의 바다였다. 온라인 뉴스의 증가로 미국인들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설문조사에 따르면, 우리는 정치에 대해 더 많이 알지도 못하고 더 많이 참여하고 있지도 않는다. 정치 정보의 민주화를 계기로 유권자 참여는 확대되지 못했다. 왜 그런 것일까?
2000년대 초, 프린스턴대학교의 정치학자 마커스 프라이어Markus Prior는 역설처럼 보이는 이 문제를 명백하게 설명해냈다. 디지털 정보 혁명이 제공한 것은 더 많은 정보가 아니라 정보의 더 많은 선택이었다 - <우리는 왜 서로를 미워하는가>, 에즈라 클라인 - 밀리의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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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혁명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방대한 정보에 대한 접근을 제공했지만, 동시에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더 많은 선택지를 제공했다. 그리고 선택의 폭발적 증가는 관심 있는 사람들과 무관심한 사람들 간의 간격을 더 넓혔다. 더 많아진 선택으로 인해 뉴스광들은 더 많이 배우게 되었지만 무관심한 사람들은 덜 알게 되었다 - <우리는 왜 서로를 미워하는가>, 에즈라 클라인 - 밀리의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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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시간당 2만 5000부 이상을 찍어내는 프레스 기계의 발전은 한 신문사가 한 도시의 인구 전체를 독자로 삼을 수 있음을 의미했다”라고 썼다. 종이 가격의 하락과 함께 신문은 더 저렴해졌고, 이것은 잠재적인 독자가 더 많아졌음을 의미했다. 광고주들에게는 신문 광고 가격이 대폭 증가한다는 의미였다. 당시에는 광고비를 신문사가 정할 수 있었기 때문에, 신문이 한 시장을 지배할 수 있다면, 돈은 말 그대도 굴러들어오는 셈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정치적 신념에 집중해 다른 신념을 가진 이들을 불쾌하게 한다면 시장을 지배할 수 없었다. 따라서 신문을 비롯한 뉴스 미디어들은 그들의 사업을 보호하기 위해 초당파적 윤리를 따르기 시작했다.
디지털 뉴스가 불러온 선택과 경쟁의 폭발은 그러한 셈법을 뒤집었다. 독점적 비즈니스 모델의 전략이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인 만족을 제공하는 것이라면, 디지털 비즈니스 모델의 전략은 특정 사람들에게 가장 매력적이면 되는 것이다. - <우리는 왜 서로를 미워하는가>, 에즈라 클라인 - 밀리의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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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 뉴스와 인터넷 이전 덜 양극화한 미디어 환경에서는, 어느 쪽이 이기는지 또는 지는지에 집중한 결과, 경마 저널리즘horse-race journalism이 나타났다. 말 그대로 정책이나 후보의 정치적 특성과 배경(정치철학, 공직 경험 등)보다 민주당이나 공화당이 다음 선거에서 이길 것인지 아니면 질 것인지에 대한 저널리즘이었다. 중립적이고자 했던 매체들은 경마식 보도를 통해 이념적으로 한쪽에 편향되지 않으면서도 청중을 가장 흥분시키는 질문들을 할 수 있었다. 한쪽의 건강보험 제도가 다른 쪽보다 낫다고 말한다면 편향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한 후보의 선거운동이 다른 후보의 선거운동보다 잘 운영된다고 말하는 것은 편향적이지 않다. - <우리는 왜 서로를 미워하는가>, 에즈라 클라인 - 밀리의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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