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정 성행위에 대한 혐오는 진화적 적응이 아니다

근친상간과 동성애, 수간 등을 행하는 사람들을 향한 도덕적 분노는 생물학적 적응의 결과가 아니다. 이런 행위들을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이런 행위들에 무관심한 사람들보다 많이 번식하지 않는다. 이런 행위들을 못마땅해하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가 그런 사람들이 없는 사회보다 더 번창하는 것도 아니다. 그 대신, 이런 도덕적 심리 양상은 일종의 생물학적 우연이다. 우리를 기생충과 독으로부터 지켜주도록 진화한 시스템이 모종의 부정적인 방식으로 성 활동에 반응하는 일이 그냥 일어나는 것이다. - <선악의 기원>, 폴 블룸 지음 / 최재천, 김수진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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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위반 행위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생물학적 우연의 결과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반응은 적응의 결과물로 진화한 다른 도덕적 반응들과 조금도 다르게 느껴지지 않는다. 성도덕은 죄의식, 수치심, 분노와 연결된다. 그래서 벌하고 싶은 욕구에 불을 붙인다. 또한, 다른 부류의 도덕적 제약과 마찬가지로 법과 관습 안에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다. - <선악의 기원>, 폴 블룸 지음 / 최재천, 김수진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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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혐오는 도덕의 단단한 기반일까? 그것도 아니다

혐오의 역사를 잠시 살펴보기만 해도 혐오감을 도덕적 신호로 여기며 신뢰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나치가 유대인들에게 느꼈던 역겨움이나 미국인들 대부분이 인종 간 혼인에 대해 느꼈던 혐오감은 현재 우리 대부분이 특정 집단과 행동에 대해 느끼는 반감과 정확히 똑같다. 그렇다면 과거에 혐오감이 틀렸던 것이 분명하건대, 지금 와서 우리가 신뢰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 <선악의 기원>, 폴 블룸 지음 / 최재천, 김수진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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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감에 의존하는 것은 동전 던지기에 의존하는 것과 같다. 동전 던지기로 얻은 답이 잘못인 경우, 원인은 동전을 잘못된 방식으로 던졌기 때문이 아니다. 동전 던지기가 틀린 답을 주는 이유는 때때로 옳은 답을 주는 이유와 똑같다. 바로 우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역겨움은 우리가 앞서 논했던 다른 도덕적 능력들과 다르다. 나머지 도덕성은 생물학적 진화와 문화적 혁신 같은 과정들을 통해 생겨났다. - <선악의 기원>, 폴 블룸 지음 / 최재천, 김수진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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