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과 연민의 관계
- 공감이 기초하여 연민이 일어나는가? 아닌 것 같다.
- 우선 공감과 연민은 다르다. 공감은 타인이 느끼는 것을 함께 느끼는 것이다. 거울신경으로 신경학적 기초가 마련되었다. empathy 를 번역한 것인데 1908년에 생긴 영어단어다. 연민은 배려하고 돌봐주고 싶은 마음이다. sympathy 를 번역한 것이다. 고통받는 타인에 대한 순수한 걱정이다. 블룸은 맹자의 측은지심과 동치한다.
- 거울신경 => 공감 => 연민 => 도덕의 선형관계를 떠올릴 수 있다. 과연 그럴까? 블룸은 공감과 연민 사이에 필연적인 관계가 없음을 논증한다.
첫째, 공감 여부는 도덕적 판단에 영향 받는다. 못된 사람의 고통에 공감하지 않기도 한다.
몹쓸 짓을 한 사람이 전기 충격을 받았을 때는 공감이 일지 않았다. 그 대신 보상, 쾌락과 관련된 뇌 부위가 작동했다 - <선악의 기원>, 폴 블룸 지음 / 최재천, 김수진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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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공감 없는 연민은 가능하다
연민을 유발하는 데 공감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철학자 피터 싱어Peter Singer가 예로 제시한 명백한 선행 사례66를 살펴보자. 여러분이 호숫가를 산책하고 있는데 한 꼬마가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것이 보인다. 호수는 몇 피트 깊이밖에 되지 않지만, 그 아이는 익사 직전이다. 주위를 둘러봐도 아이의 부모는 보이지 않는다. 여러분도 보통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면, 구조 과정에서 신발을 버리더라도 물속으로 뛰어들어 아이를 끌어낼 것이다. - <선악의 기원>, 폴 블룸 지음 / 최재천, 김수진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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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 2천 년 전, 중국의 맹자67도 그랬다. “타인의 고통에 무감한 사람은 없다…. 한 남자가 우물에 빠지기 직전의 어린아이 하나를 갑자기 발견한다고 가정하자. 그는 마음이 동해서 연민을 느낄 것이 분명하다 - <선악의 기원>, 폴 블룸 지음 / 최재천, 김수진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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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자신이 물에 빠지는 느낌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래서 그 아이를 구하게 된다는 식이다. 하지만 보통은 이렇게 되지 않는다. 십중팔구 여러분은 익사의 공포를 간접 경험하지 않은 채 물속에 뛰어들 것이다 - <선악의 기원>, 폴 블룸 지음 / 최재천, 김수진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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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연민 없는 공감도 가능하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나도 느끼지만—최대로 감정이 이입되지만—연민 대신, •••••••• 경쟁자가 천벌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나는 그가 어떤 느낌일지 상상하고 그 경험을 즐기면서 고소해할 수 있다. - <선악의 기원>, 폴 블룸 지음 / 최재천, 김수진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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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도덕적 행동은 연민 없는 공감에 의해 유발될 수 있다
원숭이와 쥐는—그리고 아마도 인간 역시도—다른 동족의 고통을 불쾌하게 여기도록 진화한 것이다. 고통스러워하는 개체에 대한 순수한 걱정과 같은 감정은 느끼지 않으면서 말이다. 아마도 그들은 공감은 하지만 연민은 느끼지 않을 것이다. - <선악의 기원>, 폴 블룸 지음 / 최재천, 김수진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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