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여에 대한 폴라니와 벤느의 논의가 놓치고 있는 것은 증여가 내포하는 인정의 차원 - 증여가 인정을 추구하며, 인정을 통해서 비로소 구성된다는 사실 - 이다.
국가가 세금을 걷어서 가난한 사람을 도울 때와 자선단체가 모금을 하여 같은 일을 할 때, 물질의 흐름이라는 관점에서는 아무 차이가 없다. 두 경우 모두 형편이 넉넉한 사람에게서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로 부가 흘러간다. 그래서 폴라니는 그 두 가지를 모두 재분배에 포함시킨다.
하지만 행위자들의 입장에서 그 둘은 결코 같지 않다. 주는 사람의 입장에서 세금을 납부하는 것은 의무이지만, 모금에 참여하는 것은 자발적인 선택이다.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실업수당이나 생활보조금을 수령하는 것은 권리이지만, 자선단체의 도움을받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고마워한다는 것은 도움받은 사실을 잊지않는다는 뜻이다.
기부자는 익명으로 기부를 한 경우에도 자신의 행동이ㅡ"이름 모를 사람의 작은 선행으로나마 ,- 기억되기를 원한다. 이점에서 기부는 개인적 관계를 추구하는 선물, 벤느가 엄밀한 의미의 증여라고 생각했던 것과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일 수 있다.
순수한 의도에서건 이해관계에 따라서건, 답례를 바라건 바라지 않건, 선물을 할 때 우리는 받는 사람의 마음에 기억을 남기려 한다. 이는 복지국가가 수행하는 재분배와 대조를 이룬다. 국가가 납세자의 돈을 복지수급자의 통장으로 옮길 때, 돈을 낸 사람은 어떤 인정도 기대하지 않으며, 받는 사람은 어떤 기억의 의무도 지지 않는다. - P1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