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과 아이젠하워의 차이

“베를린은 예전의 전략적 중요성을 잃었습니다. 따라서 소련군 최고사령부는 2선급 부대를 베를린 쪽으로 파병하려 합니다.”

베를린 함락에 대해 나중에 집필한 역사가 앤터니 비버는 이 공문을 “현대 역사상 가장 큰 만우절 허풍”이라고 평가했다.11 ‘영도자’는 베를린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기는커녕, 베를린 전투가 이 전쟁의 절정과도 같은 것이 되리라고 확신했다. 독일 제국의회와 국가수상부는 크렘린이 소련 권력의 상징이듯 나치 권력의 상징이었다. 대체로 군사적인 관점으로만 생각하는 아이젠하워와 달리, 스탈린은 정치적·전략적 관점으로 생각했다.

1945 중에서

아이젠하워의 주요 목표는 미군을 비롯한 연합군 인명피해를 최소로 억제하면서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었다. 그것은 루스벨트가 전적으로 지지한 목표이기도 했다. 반면 스탈린은 결정을 내릴 때 인명피해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지만, 그런 결정이 초래할 정치적 결과에는 편집증적으로 집착했다. 적국 수도 함락은 스탈린이 나치독일의 정복자라는 평가를 확고하게 함으로써 동유럽의 거의 대부분에 대한 지배를 확고부동하게 할 수 있었다. 그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소련과 독일에 막대한 인명피해를 입힐 각오를 했다.

1945 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