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의 의심
헝가리에서 독일군이 예상 밖의 끈질긴 저항을 하는 통에 소련군은 오스트리아 빈으로 향하는 진격을 늦춰야 했다. 소련이 보기에 더 걱정스러운 부분은 양 전선 사이의 사상자 숫자 차이였다. 보통 소련군은 하루에 독일군 800명을 죽였지만, 서부전선에서는 독일군 전사자가 60명만 나왔다. 독일군 약 2500명이 동부전선에서 매일같이 “실종”된 반면, 서부전선에서는 그 10분의 1만 실종됐다. 일리야 예렌부르크의 경멸스러운 표현에 의하면 독일군은 “미친듯이 집요하게” 미군에 항복하려고 한 반면, 러시아인들에게는 최후의 순간까지 저항을 계속했다.7
1945 중에서
독일군이 미군의 패튼 장군과 영국군의 몽고메리 장군에게 무더기로 항복하는 것은 어떤 뒷거래의 증거일지도 몰랐다. 서방연합군은 나치에 더 관대하게 대한 대가로 원래 예정보다 더 동쪽에서 소련군을 만나게 될지도 몰랐다. 만약 서방연합국이 히틀러를 적대시하는 나치 장군들과 동맹을 맺는다면 소련을 적으로 돌릴지도 몰랐다. 스탈린 자신이 1939년 히틀러의 독일과 불가침조약을 맺은 사실은 그의 의심만 부추겼다. 스탈린은 다른 정치인들도 자기만큼이나 냉소적이리라고 단정했다
1945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