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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짧은 소련사 - 러시아혁명부터 페레스트로이카까지, 순식간에 사라진 사회주의 실험의 역사적 현장
실라 피츠패트릭 지음, 안종희 옮김 / 롤러코스터 / 2023년 9월
평점 :
쿠데타와 러시아 혁명/반혁명
소수파 사회주의 정당의 변호사였던 알렉산드르 케렌스키가 르보프 왕자로부터 임시정부 권력을 인계받았다. 하지만 군대와 수도의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독일은 계속 진격하여 8월에 리가(러시아제국의 일부였던 라트비아의 수도)를 점령했다. 그로 인해 독일군이 페트로그라드에 가까지자 불안감이 고조되었다.
9월이 되자 극적인 드라마가 펼쳐졌다. 케렌스키가 최근 총사령관으로 임명해 군대 사기 회복 임무를 맡겼던 라브르 코르닐로프 장군이 군사 쿠데타를 시도했다. 그 결과 코르닐로프와 케렌스키의 관계가 멀어졌다. 이는 73년 뒤 미하일 고르바초프 서기장과 1990년 8월에 쿠데타를 시도한 소련 지도자들의 관계와 똑같았다. 어쩌면 코르닐로프가 케렌스키를 반대해서가 아니가 지원하려고 쿠데타를 감행했을 수도 있다. 철도 노동자의 즉각적인 조치로 코르닐로프 부대의 수도 진격이 저지당해 쿠데타는 실패했고, 케렌스키의 입지는 치명적으로 손상되었다 - <아주 짧은 소련사>, 실라 피츠패트릭 저/안종희 역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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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바초프의 두 가지 권력 기반은 공산당과 대통령직이었다. 하지만 공산당의 평판과 사기가 급속도로 떨어지고, 대통령직은 관료 조직과 여론 기관이 지지하지 않는 힘없는 자리였다. 강력한 국제사회의 지속적인 지원에도 불구하고 1916~17년 차르와 러시아제국이 그랬던 것처럼 고르바초프는 허둥댔다. 고르바초프와 소련 체제의 정당성은 추락하고 있었다. 합리적인 논평가라면 모두 그에 대항해 좌파 또는 우파의 쿠데타가 일어나리라 당연히 예상했을 것이다. 1917년 코르닐로프 장군의 쿠데타처럼 우파 쿠데타일 가능성이 가장 컸다. 쿠데타는 8월 중순에 일어났지만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무능하고 서툴렀다 - <아주 짧은 소련사>, 실라 피츠패트릭 저/안종희 역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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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이전의 코르닐로프처럼 모스크바의 음모자들은 소련을 분열로부터 구하기 위해 주도권을 확보함으로써 고르바초프를 도와준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대의를 텔레비전에 발표하는 그들의 역량은 한심한 수준이었다. 수만 명이 항의하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 군대와 탱크가 도심에 나타났지만 발포 명령도 그럴 의도도 없었다. 쿠데타 음모자들의 무능으로, 자유로운 상태에 있던 옐친이 이 시기의 영웅이 되었다. 탱크 위에 있는 그의 모습을 찍은 사진이 전 세계로 퍼졌다. 음모자들은 겁을 먹었고, 고르바초프는 풀려나 모스크바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의 정치적 위상과 소비에트연방의 존속 가능성은 치명적인 타격을 받았다. - <아주 짧은 소련사>, 실라 피츠패트릭 저/안종희 역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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