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33 대기근

스탈린은 농민을 죽이려 했다기보다, 농민들이 봄 파종까지 생존할 수 있는 양만 남기고 최대한 많은 곡식을 확보하려 했다. 문제는 누구도 그 양이 얼마인지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스탈린은 지방 관리들이 최대한 많은 곡식을 확보하도록 압박했고, 농민들이 더는 숨겨둔 게 없다고 말해도 곧이 듣지 않았다. 농민들의 ‘기근 연기’와 ‘거짓 파산 행세’와 같은 기괴한 표현이 소비에트 담론에 등장했다. 농민들이 속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죽어간다는 것을 스탈린이 알았을 때는 너무 늦었다. 1932~33년 겨울, 굶주림을 피해 도망치는 농민을 막기 위해 도시 입구를 봉쇄해야 했다. 봄이 오자 파종을 위해 국가 창고에 저장했던 양곡을 다시 농촌으로 보내야 했다. 기아 사망자(수십 년 후까지 소련은 인정하지 않았다)는 500만 명 이상이었다. 기근은 깊은 상처를 남겼지만 반세기 동안 공식적으로 언급되지 않다가, 페레스트로이카Perestroika 시절 우크라이나 당서기 볼로디미르 셰르비츠키가 우크라이나 소비에트공화국 건설 70주년 기념식에서 침묵을 깼다 - <아주 짧은 소련사>, 실라 피츠패트릭 저/안종희 역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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