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8년, 산업화와 문화혁명

국가가 지원하는 계획적인 산업화 프로그램을 마치 ‘계급의 적’이나 ‘외국 간섭 세력’에 맞서 싸우는 혁명전쟁처럼 제시한 것이 이상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스탈린은 무엇보다도 혁명가였다. 폭력과 계급적 분노 고취는 그가 할 줄 아는 일이었다. 당 역시 이런 일에 능숙했다. 이 방법은 경제적 합리성 측면에서는 매우 불합리했지만 당의 투쟁적 사고방식과 내전기의 당 체제를 고려할 때 그 나름대로 정치적 합리성이 있었다 - <아주 짧은 소련사>, 실라 피츠패트릭 저/안종희 역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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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혁명은 1928년 초 산업 사보타주와 외국 정보기관을 위한 스파이 활동 혐의로 기소된 엔지니어들(‘부르주아 전문가들’)에 대한 재판을 극적으로 공개함으로써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공장 노동자들은 그들의 공분을 유발하는 특권적 지위를 가진 ‘파괴자’ 엔지니어들에 대한 마녀사냥에 나섰다. - <아주 짧은 소련사>, 실라 피츠패트릭 저/안종희 역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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