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수시채용 전환의 지리적 효과
- 연구 대상

5년 정도 시간이 지난 지금 인사 담당자는 수시 채용이 직원의 정착률을 높였으므로 한편으로는 성공적이라고 말한다. 거제의 한화오션 같은 경우에도 생산관리나 설계직의 많은 엔지니어가 동남권의 조선해양공학과나 전기전자나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경우가 많다. 실제로 그들의 이탈은 많지 않다. 거제도의 두 조선소가 부산·울산·경남지역에서 가장 괜찮은 직장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2015~2016년 조선산업 구조조정이 한창인 상황에서도 이들은 퇴사보다는 그대로 회사에 머물기를 택했다. 현대자동차라면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생산 부문 담당자는 다른 한편으로 우려를 표했다. 인문사회계열이나 상경계열과는 달리 UNIST가 아닌 울산대나 동남권 대학을 나온 이공계 출신 엔지니어의 경우 기본기‘에서 차이가 난다고 전한다. 예컨대 역학(물리학)과 수학역량이 그 기본기다. 어느정도 정형화된 일을 빠르게, 싹싹하게, 열심히, 노련하게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은 지역의 인재가 더 우수할 수 있다. 하지만 어려운 과제를 궁리하고 해결해야하는 일에서는 현업의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울산의 제조 업체는 고용 안정성이 있는 지역 대학 출신 엔지니어와 잠재력이 크고 기본기가 좋은 수도권 출신 엔지니어를 놓고 매번 갈팡질팡하고 있다. - P121

1960~1970년대를 이끌었던 엔지니어의 모습은 기계공고 출신의 ‘작업장 엔지니어 workplace engineer‘였다. 엔지니어의 자질 중 잠재력보다 성실성이 더 중요했던 시기다. 주로 공고나 좀 더 공부했다면 전문대에서 설계나 가공(공작) 등을 배운 후 기술직으로 회사에 입사해 도면을 그리고 자재 관련 기술을 선배 어깨너머로 배우고 숙련을 익혔던 이들이 바로 작업장 엔지니어다. 

이들은 1980~1990년대에 애매한 직군에 있다가 적지 않은 수가 사무직이나 사무기술직으로 전환하게 된다. 

작업장 엔지니어가 일을 하고 또 일을 배우는 방식은 현장에서 현물을 보고 현상을 파악하는 ‘삼현주의‘(현장, 현물, 현상)였다. 엔지니어들은 손과 몸으로 일했다. 또 선배의 작업과 앞선 나라의 현장을 보며 눈썰미로 많은 노하우를 터득했다. 앞서 언급했던 해외의 경쟁사 제품을 가져와서 분해한 후 재조립하면서 그것을 도면에 기록하는 역설계가 전형적이었다. 이것이 현장에서의 암묵지를 통한 엔지니어들의 숙련 축적 방식이었다. 이런 방식은 조선 산업에서는 꽤 오래 유지됐고, 자동차 산업에서도 많은 부분 필수적이었다.  - P122

그런데 이제는 엔지니어링의 잠재력과 기본기의 중요성이 더 커지고 있다. 선배에게 노하우를 전수받는 도제 방식만 가지고 울산 3대산업의 엔지니어 역할을 해낼 수 없다. 이제 조선소에서는 줄자와 모눈종이로 설계를 하는 게 아니다. 모든 제품설계를 CAD(Computer Aided Design) 프로그램으로 수행하고, 생산관리의 많은 것은 센서를 거쳐 생산실행시스템인 MES(Manufacturing Execution System)와 전사자원계획시스템인 ERP(Enterprise Resource Planning )등을 통해 데이터 기반으로 진행된다. 더나아가 4차 산업혁명이 강조되는 지금 IoT 나 디지털 트윈 등 스마트팩토리로 통칭되는 데이터 기반 공정 운영과 자동화, 로봇의 활용, 현장의 3D/4D 구현은 훨씬 더 심화되는 상황이다.  - P123

많은 일이 기초적인 공학 지식과 자연과학 지식에 기대게 됐다는 것이다. 공과대학 출신 대졸사원을 뽑았던 것도 과학적 관리와 최적화, 공학적 사고를 할 필요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초적인 공학 지식, 자연과학 지식, 공학적 사고의 수준이 인문사회 계열과는 결이 다르게 대학에 따라 차이가 생길 수 있다는것이다. - P124

각지역 공과대학은 입학생 수준에 맞는 수업을 할 수밖에 없다. 또 성적 처리도 취업에 걸림돌이 되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학점‘(학점인플레)을 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러다 보면 적절한 업무를 수행할 수 있을 만큼의 기초 지식을 대학에서 쌓지 않은 채 현업에 진출하는 경우도 생긴다. 

물론 그러한 차이를 걸러내지 못할 정도로 울산 3대산업 대기업의 채용시스템이 허술하지는 않다. 

적절한 역량을 갖추어야 채용되는 것은 분명하지만 기업 관점에서 ‘탁월한‘ 혹은 ‘우수한‘ 인재만 채용해 왔다는 믿음에 균열이 생긴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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