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축성장기의 인력 수급의 약사
- 60년대 젊은 여성 노동력
- 70년대 공고 졸업자 수요 증가
- 직업훈련원을 통한 저학력 공급 충족
- 저학력 고숙련 생산직 노동자의 양산 전략
˝1960년대 경제개발계획 수립 이후 많은 경우 제조업 노동정책과 기업 전략은 저학력 고숙련의 생산직 노동자의 자리를 만드는 데 초점을 맞췄다. 노동자를 제대로 훈련시키는 것이 기업의 관심사를 넘어 국가적 의제였다. 생산성을 높이고 품질을 향상시키는 주체로서 생산직 노동자의 숙련이 매우 중요했던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가 제조대기업에 ‘직업훈련소‘를 짓게 만들고 노동자들에게 기술 교육을 시켰다. 동시에 적당한 학력의 사무직을 뽑아 생산관리를 하고 경영지원업무를 수행해 기업이 운영될 수 있었다.(86)

1960년대의 수입대체 산업화와 초기 수출주도 성장 전략이 경공업 인력을 필요로 하여 영남권의 경우 부산과 마산을 근거로 젊은 여성노동력을 필요로 했다면,
1970년대부터 진행된 중화학 공업화는 젊고 당장 기술을 익힐 수 있는 ‘기능‘ 남성 노동자를 호출하기 시작했다. 일감은 늘어나는데 그 일을 할 사람이 부족했던 것이다. 일단 공업고등학교 졸업자가 현장에 투입됐고,
그래도 인력난이 해결되지 않자 초등학교를 채 마치지 않았더라도 기업이 설치하고 정부가 보조하는 직업훈련원을 통해 용접이나 도장 등 기술을 배우고 취업을 할 수 있었다.
당시 과학기술처의 추산에 따르면 기능직 인력은 매년 최소 2만~3만 명씩 부족한 것으로 보고됐다. 그다음 기술자(대출)와 기술공(초대졸, 공고 설계직 등)도 크게 부족하기 시작했다.
1950~1960년대에는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을 포함하여 다양한 학교의 공대를 졸업한 청년의 실업난이 사회적 쟁점이 될 정도로 공학 인력에 대한 노동시장의 수요가 없었다. 하지만 1970년대 중화학 공업화를 시작하면서부터 설계를 하고 산업 현장을 관리할 수 있는 기술 인력에 대한 수요가 폭발하기 시작했다.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1980년대 내내 십수만 명이 부족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 P36
강기천, 공업 없는 공학 - 1950-60년대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의 지향과 현실, <사회와 역사>, 제119권, 41-73 2018. - P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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