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61년의 민족주의 발흥

한편, 4.19 혁명으로 인해 미 행정부가 받았던 또다른 충격은 한국에서 민족주의의 엄청난 고양이었다. 2장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1950년대 후반 미국내에서 저개발지역 민족주의의 힘에 주목하기 시작했고, 한국에서 민족주의의고양은 대한정책을 변화시킬 수 있는 중요한 동인이 되었다. 1959년의 콘론보고서는 한국 내부에서 사회주의적 경향의 고양을 통해 새로운 움직임이 대두되고 있음을 경고한 바 있다. 후술할 팔리 Farley 보고서를 비롯한 1961년 초반 이후에 나온 미국의 문서들에서 나타나는 민주당 정부의 위기에 대한 인식역시 4.19 혁명 이후의 민족주의 고양에 대한 위기의식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 P250

미국은 이승만 정부 붕괴의 한 원인이 민족주의의 발양에 있다고 보았으며, 
민주당 정부 시기의 통일운동, 한미경제협정 반대운동 등 민족주의적인 흐름이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주요한 흐름이며, 동시에 한국을 내부적인 위기로 끌고 갈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정면 정부의 등장보다 더 큰 위력을 발휘한 것은 5·16 쿠데타였다. 미국은5·16 쿠데타를 4.19 혁명에서 발현된 민족주의의 연장선상에서 파악하였다.‘ 쿠데타 세력의 민족주의적이고 폐쇄적인 요소는 민주당 정부 시절에 이룩된 한미 간의 공조에 균열이 가도록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하였지만, 다른 한편으로 경제개발을 위한 중요한 동인으로 작동하였다. 

즉, ‘사회주의적 이고 미국에 협조적이지 못하다는 점과 함께 민족주의적‘이라는 인식은 미국의 대한정책에 부정적인 요인이 되는 것이었지만, 다른 한편 적극적으로 근대화를 이끌어 갈 수 있는 힘이 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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