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노크라시 대 데모크라시

우리가 주장하고자 하는 민주제의 장점은 이와 관련은 있지만 조금 다르다. 민주제의 장점은 단순히 여러 견해가 통합된다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견해가 서로에게 길항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따라서 민주제의 장점은 상이한 견해 사이의 숙의에서도 나오지만 여기에서 종종 발생하는 불일치 자체에서도 나온다. 1장에서도 언급했듯이, 우리의 접근 방식이 함의하는 바는 다양성이 그저 "있으면 좋은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다양성은 과잉 확신에 찬 지배층의 비전에 맞서고 그것을 제약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다양성은 민주제가 강점을 발휘하게 하는 데도 필수적이다. - P145

이 주장은 서구 민주국가의 정치적 지배층 사이에 널리 믿어지고 있는 통념과 거의 정반대라고 볼 수 있다. 오늘날의 통념은 "테크노크라트에게 위임"한다는 아이디어를 토대로 한다. 최근 몇십 년 사이에 강하게 세를 얻은 이 견해에 따르면, 통화정책, 조세정책, 구제금융,
기후변화 완화, 인공지능 규제와 같은 중요한 정책의 결정은 해당 분야의 전문가인 테크노크라트들에게 위임되어야 한다. 대중은 그러한 정책의 세부 내용에 과도하게 관여하지 않아야 사회적으로 더 좋다.

하지만 바로 이 테크노크라시적 접근이 월가 은행들의 과도한 행동을 부추기는 정책을 가져왔고, 그 다음 2007~2008년의 금융위기 때 그 은행들을 믿을 수 없을 만큼 너그럽게 용서하고 구제해 주는 정책을 가져왔다. 금융위기 직전과 직후, 그리고 금융위기 동안 핵심 의사결정 대부분이 비공개로 이뤄졌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민주주의를 테크노크라시로 접근하면 특정한 비전에 사로잡히기 쉽다는것이 우리의 주장이다. 2000년대 초에 대부분의 정책결정자들이 "거대 금융은 좋은 것"이라는 견해를 받아들였던 것처럼 말이다 - P146

어떤 기업이 군중 속에서 사람들을 특정하기 위해, 혹은 제품마케팅을 더 잘하기 위해, 혹은 사람들이 저항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안면 인식 기술을 개발하기로 할 때, 그 소프트웨어를 어떻게 설계할지는 그 기업 엔지니어들이 가장 잘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소프트웨어가 개발되고 활용되어야 하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사회 전체적으로 목소리가 나올 수 있어야 한다. 다양한 목소리가 나올 수 있으려면 이러한 결과들이 더 명백하게 알려져야 하고 비전문가들이 자신이 보고 싶은 결과가 무엇인지에 대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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