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균의 이슈 한국사 - 둘만 모여도 의견이 갈리는 현대사 쟁점
박태균 지음 / 창비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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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통령은 한국은행과 한국개발연구원 그리고 대통령의 경제정책을 자문하는 경제과학심의회의 등에 지시합니다. 경제위기를 극복할 방안을 만들라는거죠 그래서 이 기구들이 논의를 합니다. 그때 나왔던 얘기들이 안정화 대책입니다. 안정화 대책의 핵심 중 하나는 정부의 간섭을 줄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첫 번째 주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시장원리대로 가자는것입니다. 두 번째는 정부의 보조금 등을 줄이면서 시장을 개방하라는것입니다. 왜냐하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는 것은 공급이 부족하다는것이고, 공급을 늘리려면 국내 생산을 늘려야 합니다. 그런데 국내 생산을 늘리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공급을 늘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해외 수입을 늘리면 공급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냐는 논리였습니다. 이것은 또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이기도 합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안정화 대책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안정화 대책은 1978년 말부터 1979년 초까지 논쟁이 됩니다. 특히 이 시기는 정치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 P234

1980년의 광주와 관련해서 최근 새로운 주장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미국이 1980년 시민이 아닌 신군부의 손을 들어준 것은 경제적인 문제 때문이었다는 주장이죠. 당시 미국은 북한의 동향이 심상치 않은 상황에서 전국적으로 시민들의 민주화 요구가 커질 경우 북한이 오관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당시 미 8군 사령관 위컴John A. Wickham. Jr. 의 주장입니다. 하지만 하지만 광주항쟁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한 카치아피카스 George Katsiaficas는 정치적이거나 안보적인 요인보다 경제적 요인이 크다고 주장합니다 - P237

즉 미국정부는 시장 개방과 핵개발 포기를 포함한 많은 요구를 했지만 박정희 정부가 이것을 수용하지 않다가 박정희 사후 신군부가 모든 요구를 수용하기로 하자 시민이 아닌 군사독재를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신군부가 집권한 이후 핵개발은 중지되었고 한국정부는 안정화 대책을 채택했으며 신한은행과 한미은행 같은 재일교포 자본과 미국 자본이 본격적으로 한국에 상륙하게 됩니다. 모든 금융기관이 정부에 의해 장악되어 있던 박정희 시대와는 다른 양상이 나타나는 거죠.

미국정부는 광주민주화운동 직전에 한국의 경제성장에 주목하면서 한국이 시장을 개방할 가능성을 타진했습니다. 그리고 광주민주화운동 직후에 뱅크오브아메리카Bank of America, 쓰리엠3M 같은 기업의 고위 관계자들이 한국을 방문하여 시장 개방을 타진하기도 했습니다. - P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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