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균의 이슈 한국사 - 둘만 모여도 의견이 갈리는 현대사 쟁점
박태균 지음 / 창비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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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L을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

그런데 이 귀중한 기본합의서를 두고 대한민국은 국회의 동의를 거쳐 대통령이 비준하는 절차를 밟지 않았다. 1992년 2월17일 기본합의서에 노태우 대통령이 서명하고 국무총리와 모든 국무위원이 부서해 대통령령으로 관보에 싣는 걸로 공식 절차를 마무리했다. 결과적으로 기본합의서에 법적 구속력을 부여하지 않은 것이다. 이는 북쪽이 조선노동당 중앙위 6기19차 전원회의(1991년 12월24일)와 중앙인민위원회·최고인민회의상설회의 연합회의(1991년 12월26일)를 거쳐 김일성 주석의 비준을 마친 사실과 극적으로 대비된다.

대한민국이 남북 정상회담 합의(6·15 공동선언, 10·4 정상선언, 4·27 판문점선언, 9·19 평양공동선언)를 국회 동의를 거쳐 비준하지 않는(또는 ‘못하는’) ‘악습’의 선례다. 정권교체 때마다 대북정책의 승계·단절을 둘러싼 논란과 ‘남남갈등’ 격화의 불쏘시개 구실을 하는 중대한 ‘입법 미비’ 상황의 지속이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25777.html#cb

NLL을 누가 그었든 간에 북한 측에서는 그 선을 승인한 적이 없을니다. 북한은 1970년대 초반까지 아무 말이 없었고 NLL은 자연스레 바다 위의 군사분계선이 되었던 거죠 그런데 1970년대 초부터 북한이 갑자기 이전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NLL이 문제가 되었죠 사실 1970년대 초부터 북한이 NLL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는지는 지금도 의문입니다. 1900년대 말부터 계속퀸 안보위기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1972년 이후 남북관계가 악화되었기 때문인지 그 이유는 분명치 않습니다. 아니면 북한의 해군이 어느정도 군사력을 갖추는 것이 1970년대 초였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한편 1991년에 NLL에 대한 합의가 있긴 했습니다. NLL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1991년 노태우 정부 시절에 이뤄진 남북기본합의서에그와 관련된 조항이 있습니다. 제11조에 보면 남과 북의 불가침 경제선과 구역은 1953년 7월 27일자 군사 정전에 관한 협정에 규정된 군사분계선과 지금까지 쌍방이 관찰하여온 구역으로 한다."라는 규정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지금까지 쌍방이 관찰하여온 구역‘에는 NLL도 포함시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남북기본합의서가 우리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즉 무효가 된 것이죠 사실 지금도 북한과 NLL 문제로 다툼 때는 남북기본합의서 이야기를 하면 됩니다. 북한 쪽에서도 인정한 선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게 남쪽에서는 유효하지 않기 ㄷ대문에 사실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 P162

2007년의 10.4 공동선언에도 NLL 관련 부분이 있습니다. 그때 남북한은 서해에 평화구역과 공동어로구역을 설치하기로 합의했습니다. 공동어로구역을 보면 NLL 주변으로 합의되어 있습니다. 곧 북한 쪽에서 NLL을 인정했다고 보면 되는 거죠.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10.4 공동선인을 무효화시켰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사실 1991년의 남북기본합의서와 2007년의 10.4 공동선언을 다시 살려낸다면 NLL이 더이상 문제될 이유가 없습니다. -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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