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얘기가 나온 김에 짚고 넘어갈 것이 있습니다. 주한미군이 철수(49년6월)하기 직전에 김일성이 스탈린을 만나기 위해 모스크바를 찾았습니다 1949년 5월, 그때 김일성도 스탈린한테 무력으로 한반도를 통일하겠다는 속내를 털어놓았습니다. 그런데 스탈린이 의외의 대답을 했습니다.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북한이 남한에 있는 미군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이었죠. 또 북한군은 충분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서 미군뿐만 아니라 남한도 이길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소련의 인식은 1950년에 갑자기 바뀝니다. 1950년 1월 스탈린이 김일성에게 오고 싶으면 오라는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1949년 말까지는 김일성이 그렇게 가겠다고 해도 오지 말라고 했었죠. 북한 입장에서 얼마나 신이 났겠습니까. 그래서 김일성이 1950년 봄에 다시 모스크바를 가게 되었습니다. 김일성은 3월 말에 가서 4월에 스탈린을 만났습니다. 그때는 남쪽의 공산당 책임비서였던 박헌영도 같이 갔습니다. 그리고 셋이서 합의한 거죠. ‘전쟁하자. 이젠 된다‘ - P122
전쟁을 벌여도 된다고 판단한 중요한 근거가 되는 세 가지 사건이 있습니다. 그중 두 가지가 1949년에 벌어졌습니다. 이 사건들은 한국전쟁뿐만 아니라 세계사적으로 중요했습니다.
첫째가 1949년에 일어난 중국의 공산주의 혁명입니다.
둘째가 소련의 원자폭탄 개발입니다. 원래원자폭탄을 가지고 있는 나라는 미국밖에 없었습니다. 즉 1949년에 미국의 원자폭탄 독점이 끝난 것입니다. 1949년은 이 두 가지 사건을 통해 공산주의자들이 큰 힘을 얻는 시기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중국이 공산주의 혁명을 했고, 미국과 대등한 공산주의 국가인 소련이 원자폭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남한에서 주한미군까지 철수한거죠. 주한미군 철수가 전쟁을 벌여도 되겠다고 판단한 세 번째 근거입니다.
미국의 군사고문단은 남아 있지만 정규군은 없는 한반도 상황을 두고 세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핵심 주제는 미국의 참전 여부였습니다. 이때 세 사람 모두 미국이 참전하지 않을 거라고 내다봤습니다. 중국이 공산화되는데도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다는 것이 그 근거였습니다. 중국에도 개입하지 않았는데 한반도같이 하찮은 곳의 전쟁이 미국이 개입할 리가 없다고 본 거죠. 그러고서는 김일성이 가져간 전쟁 계획안을 스탈린이 승인하고, 이어서 두 달 후에 한국전쟁이 발발했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