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는 연민보다 짜증에 가깝다!





터무니없이 엄격했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화장실 정치는 유명하다. 예를 들면 가정용 물 공급을 둘러싼 갈등은 공식적인 논리로는 존재하지 않아야 하는 무국적 정착민들조차도 물이 없으면 죽을 수밖에 없고 전염병은 남아프리카인과 모잠비크인을 구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마지못해 인정하고 나서야 해결되었다. 이 모든 정치적 쟁점은 시민권이 아닌 현존에 기반을 둔 요구에서 이끌어낸 힘 덕분에 현실적으로 수용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구성원에게 속하는 권리를 조정하기보다는 우리가 인접성 adjacency 이라고 부를 수 있는 물질적인 요구에 대처하는 방식으로 문제들을 다뤘다. - P67

진정한 의무를 느끼게 되는 것은 연민의 문제가 아니며, 오히려 귀찮음이나 짜증에 가깝다.

실제로 진정한 의무의 신호는 동정심보다는 짜증으로 나타난다. 행실이 좋지 않은 동생이 마약에 돈을 다 써버려 집세를 내지 못한다거나, 그러고는 당신 집에 와서 소파에서 자겠다고 한다거나, 어쩌면 지난번처럼 소파에 토해놓거나, 아마도 기약 없이 당신의 아파트에서 머물겠다고 한다면, 당신은 뭐라고 할까? 결코 "아, 너무 안됐네. 관대하게 대해야겠다!"는 아닐 것이다.

오히려 이편이 가깝지 않을까? "어쩌면 이리도 짜증나게 굴 수 있을까? 근데 어쩌겠어, 내 동생인데…………." 바로 이것이 진정한 의무가 주는 느낌이다. 지리학자 클라이브 바넷Clive Barnett과 데이비드 랜드 David Land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우리는 일반적으로 고립되고 관조적인 칸트적 관점이 아니라 실제 사회적 맥락에서 할당 결정 allocative decisions을 내린다. 나눔에 대한 생각은 활발한 사회관계 속에서 적극적인 주장과 요구가 밀고 당기는 과정에서 펼쳐진다.  - P71

시민과 마찬가지로 ‘주민‘이 자발적으로 제기하는 서비스 요구는 내가 인접성이라고 부르는 이웃의 ‘압박‘관계에서 발생하는 요구가 ‘확장‘된 것이다. 남반구 대도시 중심 지역에 새롭게 이주해 살고 있는 도시인들은 우리가 여기에 살기 때문에 화장실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깨끗한 물도 있어야 한다. 우리 아이들은 학교에 가야 한다. 최소한의 의미에서 우리는 보살핌을 받아야 하며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받아야 한다. 그리고 마지못해 이런 서비스가 보편적으로 제공되기도 한다. -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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