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교육원조로 추진된 ‘피바디 계획‘은 학자도, 이념도 아닌 미국대학의 이름을 끌어다 쓴 ‘피바디 학파‘를 만들어냈다. 피바디 계획에 따른유학이 마무리될 시점인 1968년까지 해외에서 교육학 학위를 받고 귀국한86명 중 미국 대학 출신이 80명이었고, 이 가운데 33퍼센트인 26명이 피바디 대학에서 학위를 받았다. 1960년대 후반 이후 피바디 대학 출신들은교육계에 하나의 엘리트 집단을 형성해 미국 교육 이론의 전파와 교육정책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 P92

그것은 선진 대국에 열등감을 느끼는동시에 미국을 접하지 못한 대다수에게 선민의식을 갖게 만드는 이중적인 인식이었다. 김종영은 이들 미국 유학파를 미국 대학의 지식인보다는 열등한 위치에 있지만 국내 학위자보다 우월한 위치를 점한다는 차원에서 ‘트랜스내셔널 미들맨(transnational middle man) 지식인 (초국가적 중개인으로서의 지식인)‘이라 명명했다.
이처럼 미국 유학파가 최고 엘리트로 떠오르는 과정에서 미국 유학은 개인적인 출세의 방편인 동시에 ‘선진 문물과 의식을 도입하는 강력한 통로 역할을 했다. 이를 통해 한국에서 미국식 또는 미국이 의도하는 근대화가 일방적으로 진행되었을 개연성이 높다.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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