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은 지역에 따라 중요도가 달랐다. 세계사 대부분에 걸쳐 중국과 인도는 세계 상업의 양대 중심지였다. 반면 유럽, 특히 동유럽은 변방에 지나지 않았다. 상업이 흥기하고 농경사회 카스트들의 권력이 약해진 일부 시기에는 국가들이 상인 집단에 의지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자본‘과 ‘강제‘ 사이의 균형도 그에 따라 변화했다.
예컨대 중국 송나라(960~1276) 왕조는 중국 북부에서 지배력을 잃고 상인 집단의 힘이 상대적으로 강했던 남부로 내몰린 이후 점차 상업에 의지하게 되었다. 때로는 상업에 부과된 조세 부담이 매출액의 절반을 넘기도 했다. 이를 감안하면 송나라가 상인 집단에게 매관매직을 허용하고 해외무역항을 한 곳에서 여덟 곳으로 늘려 해외 교역을 고무한 일은 그리 놀랍지 않다.
상업이 흥기하자 많은 기술 혁신과 농업 생산성 향상, 그리고 산업 발전이 나타났고, 화약 제조술과 직물 생산 방식의 기계화도 출현했다.
그러나 융성하던 상업의 시대는 1279년 몽골의 침입으로 종지부를 찍었고, 중국은 다시 소작농 집단으로부터 뜯어내는 공물에 의지하는 농경사회형 제국으로 전락했다. - P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