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지문은 저마다 독특해 개인을 식별하는 데 쓸 수 있지만 신호를 보내도록 진화하지 않아 대개 지문을 보고 서로를 식별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눈 속 미세한 혈관들의 독특한 무늬처럼 지문은 그게 가능한 단서(que)일 뿐이다.
반면에 정체성 신호(signal)는 동물의 생존을 돕는 동시에 개체 인지를 돕는 표현형 형질이다. 남이 착각해 자신을 공격하거나, 자신의 친절에 보답하지 않거나, 자신과 성관계를 가졌다는 사실을 잊거나, 자신이 자녀임을 알아보지 못하는 일을 원치 않는다면 내가 다른 사람이아니라 바로 나임을 알릴 어떤 방법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거기에 쓰이는 형질은 뚜렷하게 구별되고 기억할 수 있는 많은 변이를 지녀야한다.
따라서 예상할 수 있겠지만 얼굴 형질은 우리 몸의 다른 부위보다 다양성이 더 높다. 그리고 얼굴의 모든 세부 사항이 우리 정체성을 알리는 데 유용할 수 있으므로 조합 가능한 형질들이 많을수록 더 유리하다. 모든 얼굴을 독특하게 만들기가 더 쉬워지기 때문이다. 개인들을 식별 가능한 독특한 존재로 만들 수 있으려면 두 눈 사이 거리와 귀 모양에서부터 이마 높이와 광대뼈 각도에 이르기까지 얼굴의 모든 축면은 최대한 다양하게 조합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이런 다양한 얼굴특징들이 다른 사람과 서로 연관성이 없어야 한다는 의미다.
얼굴의 두 형질, 두 눈사이 거리와 코너비를 예로 들어보자. 예컨대 만일 두 눈 사이 거리가 넓은 사람이 언제나 코도 넓적하다면 두 형질이 각각 전달하는 정보는 중복될 것이다. 이때 가능한 조합의 수는넓은 눈과 넓은 코, 좁은 눈과 좁은 코 2가지뿐일 것이다. - P422
어떤 종이 비친족 간 협력으로 혜택을 볼 수 있다면 개체 식별 능력은더욱 유용하다. 누가 누구인지 확신할 수 없다면 누가 전에 내개 잘해주었는지 어떻게 기억할 수 있고, 앞으로 협력할 상대가 누구인지를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음식을 나누어주지 않았거나 계산할 때 쏙 빠져나갔던 사람을 어떻게 피할 수 있겠는가? 자신과 유전자를 공유하는 친족하고만 상호작용을 한다면 이런 문제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7장에서 살펴본 혈연 선택의 원리에 따라 호혜적이지 않은 상황에서조차 그냥 모든 친척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비친족 간 협력을 촉진하려면 정체성 확인이 속임수를 줄이는 매우 가치 있는 방법이다. - P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