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익점 신화

원에 사신으로 갔던 문익점은 돌아올 때 길가의 목면 나무를 보고 그 씨 10여 개를 따서 주머니에 넣어 가져왔다. 이것이 문익점의 역사적 운명을 바꿔놓았다. 문익점은 파직된 뒤 고향 진주로 돌아가 목면 재배를 시도했다. 하지만 문익점이 심은 목면은 전부 죽고 장인 정천익이 심은 것만 살아남아 3년 만에 밭을 일굴 정도로 재배에 성공했다. 정천익은 중국 승려 홍원의 도움을 받아 목화씨를 빼는 씨아와 실을 뽑는 물레를 만들었다. 정천익과 문익점은 목면 전파에 힘을 쏟아 10년 만에 전국에 목화가 보급되었다. - <하룻밤에 읽는 고려사 >, 최용범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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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목화씨를 가져온 것 때문에 목면이 전국에 퍼졌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목화는 당시 원을 오가는 여러 사람을 통해 들어올 수 있었다. 오히려 목화 재배가 전국으로 퍼질 수 있었던 데는 목화씨를 빼는 씨아와 실을 뽑는 물레, 목면 짜는 기술 등을 국산화했기 때문이라는 게 학자들의 시각이다. 한마디로 정천익의 공이 크다는 얘기다. - <하룻밤에 읽는 고려사 >, 최용범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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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가 익히 들었던 문익점에 관한 전설은 조선시대에 와서 모두 소설처럼 창작된 것이다. 문익점이 중국 강남에 가서 목화씨를 얻어왔다는 이야기는 허구다. - <하룻밤에 읽는 고려사 >, 최용범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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