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궁

물론 장궁이라고 장점만 갖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가장 큰 한계점으로 장궁병 양성에 소요되는 긴 훈련기간을 꼽을 수 있다. 즉 활쏘기에 필요한 힘과 조정기술의 습득을 위해서는 수년에 걸친 훈련과 반복적인 연습이 불가피했다. 고로 소집 동원기간이 평균 40일에 불과했던 중세 봉건군 체제로는 장궁병 양성이 불가능했다. 국왕이 급료를 지불하면서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병력, 즉 상비군적 성격의 직속부대가 필요했던 것이다. 상대적으로 봉건제적 전통이 약했던 영국의 왕실에서 바로 지속적 반복 훈련이 요구되는 장궁부대를 유지할 수 있었다. - <전쟁과 무기의 세계사>, 이내주 지음 - 밀리의 서재
https://millie.page.link/RSFBeAyQx1SmZ2BZA

영국군 장궁부대는 15세기 말에 이르면 그 효용성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 <전쟁과 무기의 세계사>, 이내주 지음 - 밀리의 서재
https://millie.page.link/UXYKEBYtu4ZiCu8W7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요인은 개인화기의 발달과 이의 빠른 확산이었다. 장기간의 양성기간이 필요했던 장궁병에 비해 소총병은 길어야 한 달이면 숙달이 가능했다. 더구나 소총의 성능이 향상되면서 장궁에 버금가는 사거리와 관통력을 얻을 수 있었다 - <전쟁과 무기의 세계사>, 이내주 지음 - 밀리의 서재
https://millie.page.link/ZUYB25fD2HreKwKy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