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센의 군사적 우위
- 선형대형 전술
- 섬광격발법

구스타푸스 아돌푸스의 뒤를 이어서 유럽에서 군사개혁을 선도한 인물은 프로이센 국왕 프리드리히 2세Friedrich II(재위 1740~1786)였다. 그는 이른바 선형線形대 - <서양 무기의 역사>, 이내주 지음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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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총병들을 3열의 선형대형으로 정렬 배치하여 근거리에서 신속하게 일제사격을 가할 수 있도록 했다.

선형대형으로의 변화를 가능하게 만든 핵심 요인은 개인화기의 개량과 그에 따른 보병전술의 발전이었다. - <서양 무기의 역사>, 이내주 지음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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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륜식 머스켓에 이어서 수석식 머스켓(flintlock musket)으로 알려진 발전된 개인화기가 등장하였다. 이는 격침擊針과 약실이 결합된 형태로, 방아쇠를 당기면 용수철의 작용으로 격침이 불심지 대신에 들어 있던 부싯돌을 때리면서 약실에 담겨 있는 화약에 불꽃을 일으키는 방식으로 작동하였다. 그 덕분에 불씨를 보존하느라 신경 쓸 필요도 없었고, 비가 심하게 내리지 않는 한 우천 시에도 전투 수행이 가능해졌다. - <서양 무기의 역사>, 이내주 지음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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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화선을 사용하는 머스켓(matchlock)의 경우에 높은 불발률로 적 기마병의 돌격에 취약하였기에 밀집대형을 이룬 창병의 보호가 필요하였다. 하지만 섬광으로 화약을 점화시키는 새로운 격발법(flintlock)을 사용하는 머스켓의 개발로 장전속도가 향상되면서 이제 소총병은 창병의 엄호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이제 개인화기로 무장한 보병부대를 이용한 공격적 전투대형의 유지가 가능해진 것이었다. 이 신형 군대를 지휘하여 프리드리히는 로이든 전투(1757)에서 프랑스군과 오스트리아군을 대파할 수가 있었다. - <서양 무기의 역사>, 이내주 지음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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