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기혁명

분류학자들은 한 사람씩 차츰 그 방법의 힘을 깨우쳐갔고, 각자 거의 종교적 개종에 맞먹는 과정을 거쳤다. 헤니히의 방법을 받아들인 일이 종종 거의 종교적 계시를 받은 일처럼 표현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것을 받아들이려면 일종의 항복이, 이렇게 말해도 된다면 헤니히에게 자신을 넘겨주는 일이 필요하다. 작은 믿음을 품었다가 믿음의 도약을 해야 하고, 그런 다음 분류군들 사이의 일반적이고 전반적인 유사성과 차이점은 무시하고, (이게 더 어려운 일인데) 특히 더 중요하게 보이는 유사성이나 차이점도 무시하며, 오직 분류군들이 공유하는 진화상의 새로움에만 의지해야 한다. 헤니히에게 항복하는 일은 당신의 움벨트를 내어주는 일이다. 당신이 가슴 속으로 헤니히를 받아들였다면, 그건 당신이 정말로 죄인이었음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과학사학자 토머스 쿤이 묘사했던, 이후로는 아무것도 예전과 같이 보이지 않는다는 패러다임 이동의 질서를 타고 일어난 변화였다. - <자연에 이름 붙이기>, 캐럴 계숙 윤 / 정지인 옮김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625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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