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민은행 이야기 - 착한 자본주의를 실현하다
데이비드 본스타인 지음, 김병순 옮김 / 갈라파고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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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주택대출사업의 1차, 2차, 3차 효과

그라민은행이 기금을 보조받기는 했지만 이 주택 사업은 처음부터손실을 예상한 사업이었다. 은행은 5퍼센트의 이자(나중에는 8퍼센트)로관리비를 충당하면서 사업을 확산시킬 수 없었다. 따라서 일부 관리자들은 은행의 재무 자립을 유지하면서 이 대출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할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집으로는 아무 소득도 만들어내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확장하기 위해 더 높은 신용이 필요했고, 은행에서 빌린 돈을 제때 상환해 신용이 높아지면전보다 많은 돈을 빌릴 수 있다. - P207

"사람들은 주택대출 사업이 그저 일상 소비를 위한 대출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들은 ‘대출받은 사람들이 돈을 갚지 못할 거예요. 라고 말했지요. 그러나 우리는 사업을 시작한 뒤 사람들이 매우 열심히 일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의 건강도 좋아졌습니다. 우리는 이 사업이가난한 사람들에게 단순한 소비형 대출이 아님을 깨달았어요. 이 대출은가난한 사람들에게 하나의 투자였습니다. 가난한 여성들에게 집은 작업장이에요. 집은 여성들이 일하는 공장입니다. - P207

농촌 사람들은 집에 방이 더 많아지고 내부 공기도 건조해지면서 쌀과 콩, 빈랑나무 열매, 여러 주요 식료품들을 대량으로 집에 보관하기 시작했다. 계절에 따른 시세차를 이용해 쌀 때 사서 비쌀 때 팔기 위해서였다. 사람들은 집 주변 땅을 더 구입하기 위해 대출을 받기도 했는데, 집주위에 더 많은 채소와 나무들을 기르고 닭과 같은 가금류도 키웠다. 회원들은 옛날 집을 허물면서 나온 자재들을 재활용해 외양간이나 야외 부억, 양계장을 보수하거나 새로 짓는 데 썼다. 이러한 변화는 농촌 주민들의 영양 상태를 개선했고 집 안에서 요리를 하면서 나는 연기를 줄이고편안한 잠자리를 제공했다. 또한 아이들이 공부하기 좋게 조명시설도 더좋아졌고 방도 더 많아졌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주택대출 사업이 가져온가장 중요한 결과는 더 건조하고 따뜻한 집이 질병 발생률을 줄였다는 사실이었다. 질병은 사람들이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가장 큰 요인이었다. 따라서 주택대출 사업은 건강보험의 구실도 할 수 있었다.
그라민은행은 1984년에서 1986년까지 수천채의 집을 지어주었고그 결과를 계속 지켜보았다. 1987년과 1988년 방글라데시 전역을 강타한 홍수가 지나간 뒤 그라민은행은 이 사업을 서둘러 확대했다. 1989년그라민은행은 주택대출 사업으로 제네바에서 아가칼Aga Khan 건축상을 수상했다. 그때 그라민은행의 대출을 받아 지은 집은 이미 6만 채에달했다. 그리고 6년 뒤에는 25만 채가 넘었다. - P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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