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후

봉건제를 실시하면서 전국의 요충지나 거점에 파견한 중요 인사를 ‘후候’라고 합니다. 그들을 ‘여러 제諸’ 자를 앞에 붙여 제후諸侯라고 통칭했지요. 제후는 각자 자신의 영지를 다스렸습니다. 제후에게 분배된 토지는 사실 초기에는 일정 기간 맡아서 관리해보라며 주 왕실이 위탁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오랫동안 제후의 일족이 다스리면서 그들의 사유지가 되어갔고, 그에 따라 제후는 점차 독립된 국가의 군주가 되었습니다. 그들을 ‘공公’이라고 불렀지요. 예를 들어 제齊나라의 군주 환공桓公, 진晉나라의 군주 문공文公, 서융의 패자라고 불린 진秦나라의 군주 목공穆公, 상 왕조의 부활을 꿈꾸었던 송宋나라의 군주 양공襄公 등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공은 각 나라의 임금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럼 공자公子는 공의 아들이니 당연히 왕자겠지요. 그리고 왕실은 공실이라고 했습니다. - <제자백가, 공동체를 말하다>, 임건순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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