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세 중국 송나라와 1990년대 세계의 동형성

과거가 전면적으로 채용되고, 당나라 때까지 남아있던 귀족에 의한 세습정치가 완전히 폐지된다. 나아가 전시라고 불린 황제 직속으로 시험 감독을 시행하는 최종시험이 설치되어..……… 라는 이야기는 고등학교에서도 배우는 것인데, 이것은 시험합격자에게 황제에 대한 은의를 느끼게 하고, 모든 관료를 황제 개인의 자식과 동일하게 취급하여 중앙집권을 철저하게 하기 위한 방책입니다(宮崎市定, 『科擧』), 바로 이것을 통해 지금까지 관리들 사이에서 사적인 당파를 만들어 자신의 파벌을 유지해온 귀족의 힘을 제거할 수 있었습니다.

더욱이 채용된 관료는 자신의 출신지에는 부임하지 못하고 수년마다 다음 부임지로 순회하는 ‘군현제 하에서 경력을 쌓기 때문에 고향에서 다진 기반으로 황제에게 반란을 일으키거나 하는 염려가 없어졌습니다 - P33

경제적으로도 귀족에 불리한 정책이 도입되었습니다. 송나라의 개혁파 재상이라고 알려진 왕안석의 청묘법 (정부가 농민에게 저리로 융자해주고 변제 때는 수확물을 화폐로 바꾸어서 갚는 것을 의무화한 입법)은 국가융자를 통해 농민에게 화폐사용이 전파되도록 한 정책입니다. 모든 백성들이 전통적인 물납(수확한 작물을 그대로 납입하는 것)이 아니라 농작물을 시장에서 판매하여 국가에 변제하는 것이지요(小島,『中國思想宗敎ⓝ奔流』). 이처럼 청묘법은 일반 서민이 상업에 눈을 뜨고 돈의 의미를 깨닫도록 고안된 것입니다. - P33

이처럼 송나라시대의 중국에서 세계 최초로 황제만을 예외로 둔 채 신분제나 세습제가 철폐된 결과 이동의 자유 · 영업의 자유·직업선택의 자유가 널리 세상으로 퍼져나가게 되었습니다. 과거를 통해 관리 즉, 지배자 층으로상승하는 문호도 개방됩니다. 남성이라면 사실상 거의 누구나 과거 시험을 칠 수 있었기 때문에 (남녀 간의 차별을 별도로 한다면) ‘자유‘와 ‘기회의 평등‘은 이때 이미 거의 달성되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결과의 평등‘ 쪽은 어땠을까요? 물론 그런 것은 보장되지 않습니다. 기회를 평등하게 했기 때문에 그 이후는 자유경쟁만 있을 뿐입니다. 장사능력을 발휘해서 대박이 난 사람, 또는 시험공부에 열심히 몰두해 성과를 거둔 사람만이 막대한 보상을 약속받습니다. 이것이 불가능한 게으름뱅이는 철저하게 사회의 바닥으로 떨어지지요. 무능한 귀족들에 의한 기득권 독점이 배제되고 어디까지나 백성 전체가 성공을 향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인센티브가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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