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의 발명
-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유다 왕국의 후손들이다
- 세상에 퍼져 있는 유대인들은 개종한 지중해 연안국의 사람들이다.

시온주의는 종교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민족주의의 하나이다. 건국의 주역들 중 많은 이들이 무신론자들이었다. 바이츠만, 벤구리온, 골다 메이어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이스라엘 건국부터 1977년까지 집권한 정당은 사회민주주의를 표방한 좌파정당이었다. 벤구리온 총리가 이끈 마파이당 그리고 이를 이어 받은 이스라엘 노동당이 초기 이스라엘을 이끌었다. 1977년 이후 우파정당과 좌파정당이 엎치락뒤치락 했고 1990년대 이후 우파와 종교적 시온주의자들 나아가 극우파가 결합한 이들이 이스라엘의 주류가 되었다.










기원 전후 로마 제국에 의해 정복된 유다 왕국 패망 이후 팔레스타인에서 살아온 주민들의 뿌리나 정체성은 시오니즘 운동 이후 논란의 대상이었다. 유대인이 로마에 의해 팔레스타인에서 추방됐다는 유대인 디아스포라 신화는 그 이후 팔레스타인에서는 고대 이스라엘의주민 혹은 유다 왕국 주민의 종족적 뿌리를 가진 주민들이 사라졌다는인식을 일반화시켰다. 이 사안에 대해 가장 논쟁적인 화두를 던진 사람은 텔아비브대학교 역사학자인 슐로모 산드이다. 유대인은 기원 전후 지중해 전역에서 개종한 사람들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산드는 고대 이스라엘이나 유다 왕국 주민들의 역사적 뿌리를 이어간 이들이 팔레스타인의 펠라힌이라고 주장했다. - P326

하지만, 초기 시오니스트 사이에서 널리 퍼졌던 팔레스타인 펠라힌이 유대적 기원을 가졌다는 주장이나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펠라힌의 융합 시도는 그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져갔다. 벤즈비가 팔레스타인 펠라힌과 유대인 사이의 공통 기원을 연구한 소책자를 발표한 1929년에 유대인의 입식 과정을 둔 갈등으로 헤브론에서의 아랍 주민 폭동과 학살 사건이 폭발했다. 헤브론 폭동으로 본격적으로 점화된 팔레스타인 현지 주민과 유대인 사이의 갈등은 1936~1939년에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광범한 폭동으로 이어졌다. 이런 일련의 사태로 인해 시오니스트 사상가들이 갖고 있던 팔레스타인 현지 주민과 유대인의 통합이라는 꿈은 완전히 동력을 잃고 말았다. - P334

‘야훼라는 유일신을 믿던 이스라엘 종족들이 팔레스타인 땅을 정복하고, 다윗과 솔로몬의 이스라엘 통일왕국이 영화를 누리고, 이들이성경을 만들고 유대교를 발전시켜, 기독교 등 유일신앙의 모태가 되고,
로마의 정복으로 팔레스타인에서 추방돼 유랑과 이산을 겪고, 서방 기독교 세계에서 박해받다가, 고토 팔레스타인에 돌아와 이스라엘을건국하고, 주변 아랍 국가와의 투쟁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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