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주의와 민족주의

특히, 유대인에게 성지로의 집단적 귀환은 시온에서 최후의 집단적 구원을 징조하는 세상의 종말을 의미할 뿐이다. 시온이 있는 예루살렘은 종교적 성지일 뿐이다. 유대인의 조국 땅이거나, 나라를 재건할곳은 아니었다. 기독교도, 무슬림, 불교도가 성지를 갈망하고 순례하기는 하지만 그곳을 조국이거나 돌아가서 종교 왕국을 세울 곳으로 상정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귀환해서 국가를 건설하자는 시오니즘의 출현은 근대 이후 반유대주의와 민족주의 조류를 배경으로 한다.
시오니즘을 국제적인 정치 운동으로 이끈 헤르츨 이전에 시오니즘은중부 및 동부 유럽에서 18세기 이후 출현했다. 유대인을 물리적으로박해하고 동화를 거부한 포그롬(조직적인 탄압과 학살) 등 근대의 반유대주의가 고조되는 사회에서 유대인들은 도피처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반유대주의는 민족주의 조류와 짝을 이뤄 출현했다. 그리고민족주의 흐름을 맞이한 유대인의 대응 또한 제 정체성을 민족화하는것이었다. 합스부르크 제국과 오스만튀르크 제국이 쇠락하는 가운데그 영역 안에서 섞여 살던 종족과 종교 집단들이 민족주의를 추구하자, 유대인 역시 유대교를 기반으로 자신들을 ‘민족‘으로 재정의한 것이다. - P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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