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품의제도는 의사결정의 권한과 책임이 불분명하게 되어 있다는점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권한과 책임은 항상 등가여야 합니다. 권한 없는 책임은 개인을 비굴하게 만들 것이므로 권한도 없는 사람에게 책임을 지도록 해서는 안 되며, 책임 없는 권한을 갖고 있는 사람은자신의 권한을 남용할 것이기 때문에 책임을 지우지 않고 권한만 부여해서도 안 됩니다. 이것은 조직설계에 있어 가장 기본이 되는 원리입니다. 품의제도는 이 기본원리를 무시하고 있습니다. 권한은 위로 집중시키면서 책임은 아래로 분산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 P211
아랫사람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서현실을 보다 더 나은 상태로 바꾸었을 때에 창의력을 발휘한 사람에게만 좋은 평가를 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윗사람들은 아랫사람의 아이디어에 도장을 찍어 주었다는 이유만으로 좋은 평가를 받게 됩니다. 이렇게 품의제도란 그 특성상 개인에 대한 공정한 평가를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하는 제도입니다. - P213
넷째, 품의제도 아래에서는 어떠한 의사결정도 그 결과에 대하여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의사결정이 특정한 개인, 즉 독립적 인격체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고 비인격적인 조직체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 책임도 어떤 인격체가 아닌 조직 전체에게 돌아가게 돼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어느 누구의 인격체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도록 돼 있다는 말입니다. 커다란 사고가 발생해도 누구에게도 그 책임을 묻지 못하도록 교묘히 꾸며져 있습니다. 그러니 그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사람들, 즉 그 조직의 장(長)이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물러나곤 합니다. 이것은 매우 불합리한 제도입니다. - P218
검사는 각 개인으로서의 인격체이지만 검찰은 조직입니다. 검찰이라는 조직은 사람과 같은인격을 갖지 않습니다. 따라서 아무리 어처구니없는 법률적 판단을 내려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검사라는 한 개인의 인격체가 그렇게 한게 아니라 검찰이라는 조직이 그렇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판단을 내리도록 지시하고 실제로 그런 판단을 발표한 검사들도 별로 그 일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은 조직을 위해 일했다고생각하고 그들 자신의 인격은 검찰이라는 조직 속으로 숨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 P219
10 만약에 검찰이라는 조직이 품의제도에 의한 상명하복이 아닌 검사각 개인이 자신의 인격과 명예를 걸고 업무 처리를 하게 하는 의사결정시스템이었다면 검사들이 그런 부끄러운 결정을 내리지는 않았을겁니다. 그리고 조직이 아니라 그 조직에 속한 각 개인이 자신의 인격과명예를 걸고 내린 의사결정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그런 시스템으로 체계개선(re-systematizing)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이런 부끄러운 일은 언제라도 재발할 것입니다. - P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