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대다수 성서학자는 진정한 유일신앙은 유다 왕국이 패망해많은 지식인과 지배층이 바빌론으로 끌려간 바빌론 유수 시기인 기원전 6세기 후반 이후에 생겨났다고 합의하고 있다. 그전까지는 이스라엘이나 유다 왕국 내에서는 야훼 신앙은 단일신교, 즉 다른 신들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고 하나의 신만을 숭배하는 형태로 종교개혁가 사이에서 존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요시야 왕 이후 남유다 왕국은 바빌로니아에 의해 멸망하고, 유다의 엘리트들은 바빌론에 끌려갔다. 이들이 거대 제국의 수도에서 소수집단 공동체를 이루고 제 나름대로 정체성을 유지했을 것임을 현대 미국의 뉴욕이나 로스앤젤레스 등의 이민 공동체를 보면 유추할 수 있다. 이미 요시야 왕 때의 종교개혁에 고취된 이 엘리트들의 손에서 민족적 비극의 경험에 더해진 선진문명의 충격이 성서라는 결과물로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 P78
이들은 바빌로니아를 멸망시키고 새로운 패권 제국으로 등장한페르시아의 고레스 대제(카루스 2세)에 의해 50여년 만에 가나안으로돌아가도록 허락받았다. 하지만, 대부분이 바빌론에 남고, 일부만 가나안으로 향했다. 번화한 세계의 중심에서 반세기를 살면서 생활 근거지를 찾은 이들에게는 조상들이 발원했다는 벽촌의 가나안으로 돌아갈현실적 이유도, 의무도 없었다. 중세 이후까지 바빌론에 존재한 최대유대인 공동체가 이를 말해준다. - P78
페르시아의 통치에서 ‘예후드‘ 지역으로 편제된 가나안으로 돌아온 이들은 황제의 대리인으로 사실상 총독 역할을 하면서, 자신들의종교와 이데올로기를 전파했다. 바빌론 유수 이후 성서에서 이스라엘의 예언자로 등장하는 에스라 느헤미야 등은 사실상 페르시아 황제의총독이라 할 수 있다. 사제이기도 한 이들의 통치는 신정 통치의 성격을 가졌다. 이는 성서에서 다윗 왕국 성립 이전 판관들의 통치를 담은사사기로 엿볼 수 있다. 성서는 남유다 왕국의 다윗 왕가의 정통성을 인정하지만, 그 역대왕들의 타락도 질타하고 저주한다. 성서가 요시야 왕 때 만들어졌다면, 왕가에 대한 이런 불경이 어떻게 가능했겠는가? 당시 예후드를 통치했던 사제들의 관점과 지위에서만 과거 역대 왕을 비판하는 게 가능했을테다. 그리하여 왕국들의 멸망과 바빌론 유수는 신과의 약속을 저버린이스라엘에 대한 벌이고, 바빌론 유수에서 해방도 야훼의 약속이 실현되는 과정이라고 주장할 수 있었다. -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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