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이전 탈레반

칸다하르는 1970년대에 쿠데타로 실각한 아프간의 마지막 왕조인 두라니 왕조의 근거지이다. 아프간 전역을 통치했던 파슈툰족의 영화를 상징하는 곳이다. 동쪽 파키스탄에서 수도 카불뿐만 아니라 중앙아시아 쪽으로 연결되는 교역로의 중심이기도 하다. 소련 침공에 이은 내전으로 칸다하르 지역은 성폭행과 납치, 폭력이 일상화된 연옥으로 변했다. 1994년께 파키스탄 퀘타에서 칸다하르를 거쳐 헤라트와 이란으로 가는 길에는 수백 곳의 통행료 징수처가 있었다. 칸다하르와 카불 사이의 길도 마찬가지였다. 교역에 의존하는 파슈툰 주요 부족의 상인들로서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탈레반은 이 지역  기업인들이 모금한 25만 달러 상당의 신변보호 자금을 바탕으로, 1994년 봄 소규모 민병대로 등장했다. 풍부한 전투 경험과 신앙에 바탕을 둔 헌신, 그리고 같은 학교에서 뒹굴었던 동지애를 지닌 이들은 칸다하르 지역의 소규모 군벌들에 대한 과감한 공격과 척결로 두각을 나타냈다. - <이슬람 전사의 탄생>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7347741

부토 1기 정부에서 내무장관을 지낸 바바르는 1970년대 말 아프간 전쟁 초기 때 무자헤딘 훈련 등 아프간 공작을 담당한 전력이 있었다. 바바르는 당시 파키스탄으로서는 통제가 불가능한 마수드의 카불 지역보다는 칸다하르 지역의 질서와 안정을 먼저 회복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칸다하르와 헤라트를 통과하는 아프간의 남쪽 간선도로를 통해 이란과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갈 수 있었다. 이 루트는 카불을 통하는 루트보다도 더 유망했다. 이란뿐만 아니라 석유가 나오는 카스피 해 쪽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가는 지름길이기도 했다. - <이슬람 전사의 탄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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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이 가혹한 샤리아 법을 강제했지만, 주민들은 이를 평화와 사회 안정의 대가로 받아들였다고 캐나다의 정보 분석은 지적했다. 미국 국무부 보고서도 “탈레반은 통치 지역에서 조악한 형태의 법과 질서를 회복했다. 이는 잔혹한 사법 체계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버넌스였다”고 지적했다.13 - <이슬람 전사의 탄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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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은 아프간 무자헤딘 세력의 가장 관대한 후원자였던 사우디아라비아의 전폭적 지지도 얻어낸다. 사우디 왕가는 걸프전 때 사우디의 미군 주둔을 이유로 자신들을 비난했던 헤크마티아르 등 기존 이슬람주의 무자헤딘들에 대한 지원을 끊었다. 탈레반은 자신들의 국체를 모범으로 삼고, 와하비즘의 교리를 받아들였다. 사우디 총정보국의 막강한 재정 지원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 <이슬람 전사의 탄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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